1. http://infosample.tistory.com/5 릭벨 7대죄테마 글앤솔...을 합니다 멤버 완전조아여 흑흑 표지이뻐여 예약해주세여
https://twitter.com/cyp_mambo/status/694873330843713537
2. 2서코 양일 J36,37이에여 어느쪽이 샆일지는 아직 모르는...글앤솔은서코에나와여
3. 릭벨 배포전 나가여 합동지랑 개인지...가 있을예정이에여 예이
1. http://infosample.tistory.com/5 릭벨 7대죄테마 글앤솔...을 합니다 멤버 완전조아여 흑흑 표지이뻐여 예약해주세여
https://twitter.com/cyp_mambo/status/694873330843713537
2. 2서코 양일 J36,37이에여 어느쪽이 샆일지는 아직 모르는...글앤솔은서코에나와여
3. 릭벨 배포전 나가여 합동지랑 개인지...가 있을예정이에여 예이
1월9일...자...넘늦은답변이다흑흑흑 연락처가 적혀있지않아 이쪽으루...ㅜ
http://cottonandmilk.cafe24.com/patipati/ 요기 웹박주신분 답변입니다
흰글씨에여
안녕하세요 맘보님 레이즈데드를~님>
안녕하세여 저야말로 구입 감사드려여ㅜㅜㅜ정말...정말 좋은말씀 많이주셔서 감사하고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이에여 그건 어 어...무서울수있었다고생각합니닼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흑흑 진짜진짜 감사드려여 한마디한마디에 힘을 얻어갑니다 익명님도 새해복 많이받으시고 올한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할게요ㅜㅜ!저도 힘내겠습니다 흑흑
http://tobenu.postype.com/post/179226/
포오스타입에 샘플 왕창불려서 추가해둔
Raise Dead
R19/문고판/230P
17000원
표지: 타삐(@999_tapir)님
전프레로 엽서 2장(앞표지/뒷표지) 드려여~.~!
+로 2016 릭벨 연하장세트(...)도 드립니다
https://twitter.com/cyp_mambo/status/681333706489860096
이거
릭벨. 쌍방집착. 설정날조, 모브주의.
벨져 홀든의 가장 소중한 사람은 제레온 프리츠일것이다. 아마도 영원히.
릭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벨져의 곁에 머무르며 그의 모습을 지켜본다.
벨져와 이도저도아닌 관계를 유지하던 사이 벨져가 인식의문에 도달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일어난 어떤 일에 릭은 충동적으로....
안사귀...는데...떡은치던 릭벨전제. 제법 순애물같기도하고...
인식의 문이 닫히고 릭이 문앞에 쓰러져있던 벨져를 주워 도망가는 이야기.
벨져의 신체연령(...)이 어...왔다갔다합니다
쌍방집착. 둘다 좀 병이 깊은것같은.......
19금파트 샘플 > http://manbounikki.tistory.com/123
문장부호같은거 교정이 덜된상태에여
◆샘플01
아이는 벤치에 앉아 딱딱한 나무의자와 함께 눈에 잠긴다. 여덟아홉 살쯤 되어보이는 어린 아이다. 코까지 둘둘 감은 빨간 목도리에 검은 털모자. 하얀 코트. 검은 바지. 인파로 북적이는 초겨울의 북적이는 역 앞을 졸린 듯 멍하니 바라보는 두 눈은 물에 잠긴 옥색이다. 땅에 닿지 못한 가느다란 두 다리가 느릿하게 흔들린다. 초겨울의 눈이 몸 위로 쌓여간다. 털어낼 생각도 않고 식물마냥 그저 쌓이는 눈을 그대로 맞고 있을 뿐이다. 하얀 머리카락과 쌓여가는 하얀 눈은 경계가 불분명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끗흘끗 아이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눈에 띄는 모습임은 분명하다. 외모 자체도 그러했지만 에워싼 분위기가 호기심을 돋운다고 해야할까. 모든 시선이 흘끗거리며 홀로 벤치에 앉은 아이를 흘기고 지나갔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대변하듯 먼저 말을 건 건 붉은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이다. 눈이 쌓이는 하얀 우산의 그림자가 아이를 드리운다. 어머, 혼자니? 부인의 물음에 대답은 없다. 다시 한 번 질문.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여전히. 젊은 부인의 질문에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반쯤 잠에 감겨있던 두 눈이 슬쩍 부인을 치켜 보았다가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무례하다면 무례할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부인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 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하얀 코트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긴다. 어서 가자, 부모님을 찾아야지. 아이는 귀찮은 듯 눈을 찌푸리고 다른 손으로 제 소매를 잡은 장갑을 떼어낸다. 어머, 얘 좀 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옆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말을 건다. 죄송합니다 부인. 갈색머리의 청년이다.
"일행입니다. 저희 애가 감기에 걸려서…표를 사올 동안 잠시 기다리라 했는데 실례를 범한 것 같군요."
청년의 말에 부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아이와 청년의 얼굴을 번갈아본다. 손을 입가로 가져가 머뭇거리는 것도 잠시. 어머머. 하고는 작게 웃었다.
"저는 또 미아인줄 알고. 저야말로 실례했어요."
젊은 부인이 종종걸음으로 멀어진다. 그 눈에 띄는 새빨간 드레스 자락이 시야에서 사라져간다. 남은 청년의 입에서 그제야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 동작을 파란 눈이 담는다. 청년은 고개를 멈추더니 눈을 깜빡거리고 아이를 내려다보며 시선을 마주한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아이의 하얀 소매 밖으로 나온 손을 다시 소매 안으로 집어넣어 준다. 아이는 그 움직임을 멀뚱멀뚱 응시하더니 슬쩍 시선을 들어 제 손을 담은 릭의 눈을 보았다. 릭, 늦었군. 목도리에 파묻힌 목소리는 작고 나른하다. 이어서 작은 웃음소리. 릭이 시선을 들어 푸른 눈을 마주한다.
"…'저희 애가'? 내가 언제부터 네 아이였나. 보기보다 거짓에 능하군?"
"너무 심한 소리 마시오 벨져. 그러면 뭐라 하겠소?"
눈가로 웃으며 자신의 거짓을 책망하는 벨져에게 릭이 너스레를 치며 대답한다. 벨져가 이마까지 꾹 눌러쓴 검은 모자에는 눈이 제법 쌓여 그 색이 얼룩덜룩했다. 그 아래로 흘러나오는 하얀 머리카락과 창백한 피부. 그야말로 하얀 거짓말이군. 릭은 하얗게 눈이 쌓인 벨져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내뱉었던 자신의 변명을 그렇게 자조한다.
"사람이 많아 줄을 서야 했어. 혹시나 만석일까 불안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표는 무사히 구했다오. 이제 여정을 시작할 시간이야."
릭은 손을 뻗어 모자에 쌓인 눈을 털어낸다. 벨져는 미동도 않고 그 손을 받아들였다. 쌓인 눈을 가볍게 툴툴 털어내고, 목도리를 다시 둘러주었다. 파란 눈이 졸린 듯 깜빡거린다. 차가운 손으로 볼을 찰싹였다. 일어나시오, 아직 침대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목도리로 얼굴을 칭칭 감겨 빼꼼히 나온 눈이 불쾌한 듯 가느다래진다. 지금은 그저 어린 아이의 투정으로만 보이는 표정에 릭이 다시 한 번 웃었다.
벨져의 두 눈이 릭을 올려다본다. 릭은 소매를 걷고 시계가 주렁주렁 감긴 제 팔을 바라보고 있다. 릭이 어느 시계를 보고있는지 벨져는 모른다.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 릭이 어떤 시계를 바라보는지, 이곳이 어디인지. 다만 그럼에도 묻는 것은 목적지를 알고 싶은 이유는 아니었다.
"어디로 갈 거지?"
벨져의 입술 사이로 새는 음성은 여전히, 한없이 작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을 정도로. 릭은 그 작은 소리조차 당연하게 귀에 담고 벨져와 눈을 마주한다. 겨울이 짙어진 날에 여름을 품은 녹색 눈이 부드럽게 웃었다.
차가운 손이 검은 털모자를 벗기고 하얀 머리를 쓰다듬는다. 창백한 볼을 크게 다르지 않은 손으로 감쌌다. 추위 탓에 얼어붙은 살갗으로 전해오는 감촉이 무디다. 다만 맞닿은 피부가 지독하리만치 연하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제 볼을 마구 주무르는 손도 내버려둔 채로 벨져의 눈이 깜빡인다.
그대로 하얀 머리카락을 헤집고 손끝으로 머리카락에 숨은 귀를 어루만졌다. 벨져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잠시 열었다가, 닫는다. 고개를 잔뜩 쳐든 얼굴을 내려다보는 감각은 제법 유쾌하다. 평생에 벨져 홀든을 내려다 보는 순간이 올 것이라 누가 생각했겠는가.
릭이 히죽거리는 모습을 보다 못했는지. 벨져가 재촉한다. 릭, 대답해.
"멀리. 가능한 한 먼 곳으로 갈거요. 더 북쪽으로."
북쪽? 그렇소 북쪽. 벨져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약간 찌푸렸다.
"기차만으로는 네 집까지 갈 수 없다."
"집으로는 돌아가지 않아."
릭의 말에 벨져는 눈을 약간 동그랗게 떴다. 돌아갈 생각은 없다. 릭은 아직도 그저 웃고있을 뿐 말을 잇지 않는다.
먼 곳으로 갈 것이다.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도록. 누구의 추격도 받지 않도록.
당초의 목표와는 달랐으나 어째서인지 제어가 되지않던 능력이 이곳으로 저와 벨져를 이끌었음은 필히 운명일 것이다. 언젠가 릭이 발을 디뎠던 북쪽. 누군가와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곳으로 떨어졌다는 건.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 능력에 의존할 수는 없었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포탈은 그저 위험할 뿐이니까. 만약 지금 제 능력이 온전했더라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약간 다른 길을 택했으리라 자조하면서.
그대는 항상 이동수단 따위를 쓸 필요는 없다 했던가. 릭은 쓸데없는 낭만이라며 벨져가 인상을 찌푸리던 것을 기억하고 작게 웃는다. 벨져와 한 번쯤 먼 길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능력을 크게 사용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것이 이런 식으로 실현되리라고 당시의 릭은 생각지 못했다. 눈이 잔뜩 묻은 모자를 두 번 털어, 머리에 씌워준다.
어린아이마냥 마음이 앞섰다. 손을 잡아 등을 돌리고, 당기듯 걸음을 떼었다. 몇 걸음 떼지 않아 뒤로 묵직하게 무게가 실린다.
차가운 손으로 이어진 몸이 바닥으로 질질 끌렸다. 하얀 코트와 검은 바지가 바닥으로 쓸리면서 눈에 젖는다. 릭은 손에 실리는 체중을 깨닫고야 뒤를 돌아 아래를 바라본다. 벨져는 다른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는 있었지만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릭의 입술 사이로 작게 한숨이 흘러나온다. 이런, 내가 실수했군. 지금 벨져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데도 그만 순간의 충동에 멋대로 행동해 버렸다. 곤란한 듯 눈썹을 내리면서도 입가로는 부드러운 미소가 걸린다.
아직도 걷지 못하는 거요? 릭의 말에 벨져는 가만히 바닥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군. 약간 늦은 짧은 대답. 빨간 목도리에 묻힌 목소리는 한없이 작다.
두 다리가 느릿하게 접히고 검은 모자 위의 털방울이 흔들거린다. 벨져는 그답지 않게 꾸물거리며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조차도 제법 버거워보인다. 일어서지는 못하겠군. 릭은 고개를 젓는다.
"벨져 홀든이라는 자가 이렇게 무력해지다니. 며칠 전까지의 당신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군.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고개를 들지 않는 벨져의 표정을 알 수가 있을까. 하지만 반응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릭은 손을 풀고 몸을 굽혀, 하얀 코트의 겨드랑이 아래로 제 팔을 넣었다. 그대로 한참이나 가벼워진 몸을 들어올린다. 힘이 들 것도 없었다. 머리가 어깨 언저리까지 스윽 들어올려지자 눈에 약간 젖은 하얀 팔이 릭의 목을 끌어안고, 릭은 팔로 엉덩이를 받쳐 벨져를 지탱했다. 작은 숨소리가 귓가로 닿는다.
누가 보아도 그저 닮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벨져를 아는 이조차 이 아이가 그렇게나 고고하고 오만하게 비치던 검사 벨져 홀든이라고 누가 인식할까. 설마 그럴 리가. 얼굴을 아는 이조차 그리 생각할 것임이 분명했다. 벨져의 유년시절을 아는 근친자들이나 열 살조차 된 것 같지 않은 이 작은 몸이 자신들이 아는 벨져라고 깨닫겠지.
의사도 묻지 않고 그렇다고 협박을 하지도 않고 그저 그자리에서 들고 도망쳤다. 지금이라면 누구에게도 빼앗길 일 없이 어디로 도망갈 걱정 없이 벨져 홀든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완벽한 기회라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벨져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릭을 따랐다. 그렇기에 납치극이 분명한 이 상황을 릭은 도피극이라 합리화한다.
벨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릭이 알 방법은 없다. 릭은 벨져가 눈을 뜨면 잔뜩 노려보고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무슨 짓이지 릭 톰슨? 나를 어서 제레온 경의 곁으로 데려가. 그런 식으로 잔뜩 화를 내며 서늘한 두 눈에 더욱 찬 기운이 서릴 거라 예상했었다. 하얀 입김이 눈앞으로 서리는 겨울의 북쪽 땅에서. 벨져의 푸른 눈과 마주한 릭은 잔뜩 긴장했다. 예상하던 답변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무서웠다. 물론 지금의 벨져는 능력조차 무의미한 몸이 되었으니 제압하기는 쉬울 것이다. 다만 그런 식으로 함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전쟁은 끝났다. 인식의 문은 릭이 보는 앞에서 닫혔고 아마도 안타리우스는 사라질 것이다. 확언하지 않는 이유는 안타리우스의 사멸이 후일담과도 같을 최종장에서 다루어질 이야기인 탓이다. 문이 닫히며 무대의 막이 내린 순간, 릭은 주역을 데리고 무대에서 도망쳤으므로.
막이 내리고 주역을 잃은 채 진행되어야 할 최종장에 릭은 아무런 감상도 느끼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과연 주연의 부재를 어떻게 할까. 사방팔방으로 수소문하며 찾을까? 그의 가족들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벨져 홀든을 찾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글쎄. 오히려 그가 무대를 떠남으로써 그의 공적을 나눠 먹는데 급급하겠지.
다만 만약, 지금의 벨져가 다시 무대로 돌아간다면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날 것이다. 릭은 그렇게 생각했다.
--우스운 일이지. 그대가 모든 것을 끝냈는데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잃다니. 누구도 당신을 찾지 않을 거요 벨져 홀든. 영웅이란 그런 법이거든. 전쟁이 끝나면 어둠을 밝히기 위해 강해졌던 빛은 너무나 밝아서 쓸모가 없어. 별이 터지는 순간처럼 죽어 마땅하다고 모두가 생각해.
흔들리는 기차에서 릭은 벨져를 앞에 두고 그리 말했다. 벨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긍정도 부정도. 그저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을 뿐이다.
릭은 조금 웃었다. 이 무슨 꼴일까. 섬광이라 불리던 사내가 제 일을 모두 완수한 순간 역으로 무력한 존재가 되어버리다니. 어딘가의 희극에나 나올 법한 전개임이 분명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을까. 벨져에게는 후회도 탄식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개를 숙이며 운명에 순응할 것 같지도 않다.
전부 부질없지 않나? 당신이 그리 목숨 바쳐 경배한 제레온 프리츠에게 이런 그대는 그저 짐에 불과할 테니. 그가 그대를 보호하려 해도 그대가 거부하겠지. 이제 그대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힘도, 능력도, 명예도. 벨져 홀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은 모래처럼 흐트러졌소.
제레온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그 안색이 변할 것을 알기에 입에는 담지 않는다.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있을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벨져 자신일 터였다. 벨져가 자신의 인생을 바쳐 숭배하고 따르던 그의 곁에 벨져는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설령 제레온이 원한다 하더라도 벨져가 고개를 저을 것이었다.
적이 많은 사람이다. 지켜질 수 밖에 없을 존재가 된 벨져를 곁에 둘 선택을 할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 이미 무언가를 짊어진 사람은 벨져가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짐을 떠맡고 싶어 할 사람이 없을 것은 물론이요, 벨져 홀든이라는 자가 과연 짐이 된 자신을 용서할까?
"벨져."
부르는 소리에 푸른 눈이 릭을 향한다. 눈에 서린 고귀함은 예전과 같으나 그 빛은 예전 같은 위압감을 주지 못한다.
"그대를 사랑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두 눈이 깜빡깜빡 릭을 담는다. 졸린 듯 반쯤 감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조금의 기척에도 눈을 뜨던 사람이 코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로 깊게.
얼굴로 길게 떨어진 머리카락을 걷어주려 팔을 뻗는다. 손끝이 닿으려던 순간, 다시 팔을 거두었다. 잠든 얼굴은 벨져 홀든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한없이 무방비하고 유약하다.
◆샘플02
▼19금파트 샘플의 건전한부분과 동일합니다. 19금전에 자름
그저 새카만 암흑뿐이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다. 빛 한 점 없이 검정만이 짙게 퍼진
공간이었기에 제 손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그저 이상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릭은 혹시나 환상일까 싶어 손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약간 거칠어진 손은 릭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 동작을 시각으로 확인하면서 엎드려있던 신체를 천천히 일으킨다.
시선을 제 손목, 팔로 올리고, 무릎 꿇은 허벅지로 옮긴다. 검은 어둠 속에 자신의 신체만이 명확하게 떠올라있다.
아마도 바닥이 아닐까. 평평하게 이어지는 면적에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시야가 완전히 새카맣게 막힌 탓인지 멀쩡하게 서있어도 선 것 같지가 않았다. 눈앞이 흔들리는 것 같은 묘한 메슥거림을 억누르고 눈을 찌푸린다.
좌우로 몸을 돌리고 마지막으로 뒤로 돌았다.
릭
은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빛의 경로를 보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작이 되는 지점은 암흑의 중간이다. 균열마냥 암흑의
중간에서 터져나오는 빛. 그 입구에서 쏟아지는 빛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사람을 릭은 아주 잘 안다. 신체의 윤곽을 따라 긴
그림자가 이어진다. 바람 한 점 없는 공간에서 뒤편으로 하얗게 흩날리는 머리카락. 익숙한 옆모습.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부름이 닿은 걸까. 반응이라도 하듯, 파란 눈이 시선으로나마 릭을 흘겨본다. 그리고 이내 다시 정면을 향했다.
무언가를 잡고 있는지 팔이 앞으로 뻗어있었다. 손이 무엇에 닿아있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정신없이 그 옆으로 내달렸다.
주변으로 보이는 물건이 아무것도 없으니 거리를 가늠할 수 없었다. 몇 걸음이나 내달렸을까. 릭은 어느 순간 자신의 귀를 가득 채우는 잡음을 깨닫는다.
무
언가 돌아가는 소리. 인간이 가진 공포를 바닥부터 끌어올리는 기이한 소리다. 릭은 평생에 이러한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나마
유사한 것을 떠올리자면 거대한 환기구가 돌아가던 소리라고 해야할까. 기계적인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그 출처는 분명했다. 지금
자신이 나아가고 있는 바로 앞. 순간 두려워져 걸음을 멈춘다.
다시 한 번 그를 부르려던 찰나 시선이 맞았다. 뒤돌아본
벨져의 입가가 무언가를 그렸다. 자신의 이름임이 분명했지만 고작 한 음절인 제 이름은 미처 릭의 귀에 닿지 못한다. 무언가
소리내어 닫혔다. 그것은 아마도 문일 것이라 릭은 직감한다. 동시에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시끄럽던 소리도 함께. 정적이
깔린다.
하얗게 직선으로 쏟아지던 빛이 사라지고 시야가 완전한 어둠으로 물드는 것은 순간이다. 문이 소리 내어 닫힌 순간, 바닥으로 쓰러지는 하얀 청년을 보았다.
"벨져!"
주변으로 릭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디까지 닿아 어디에서 반사되는지 알 수 없을 공간에서 사방으로 릭의 부름이 잔상이 되어 떠돈다. 그 곁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남아있는 것은 허름한 망토와 옷, 마지막으로 검 두자루였다. 옷을 입고 있어야 할 사람이 막상 보이지 않아 릭은 덜컥 겁이난다.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몸이 스르르 주저앉고, 그제야 그 안에 무언가 있음을 깨닫는다.
벨져가 몸에 걸쳤던 옷가지 사이에 파묻힌 작은 그림자. 어린 아이. 아직 열 살조차 되지 않았을 것 같은 작은 아이였다. 릭은 눈을 크게 뜬다. 그 아이야말로 릭이 방금 보았던 스물 여섯의 청년. 벨져 홀든임이 분명했기에.
어
린 몸을 주워 올린다. 달각 소리를 내며 어깨갑주가 옆으로 구르고 그 아래의 자켓과 바지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나마 입고 있던
셔츠만이 창백한 신체를 덮은 채 남아있었다. 헐렁하게 목을 감싸는 크라바트 사이로 가느다래진 목선이 얼핏 보인다.
당연하게도 릭 톰슨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손을 뻗고있던 벨져는 분명 자신이 기억하던 대로 이미 클 대로 큰 청년이었다. 그랬던 벨져가, 이렇게 순식간에, 어린 아이로 돌변한다고? 믿을 수 없지만 실재하는 현실에 머릿속이 하얗게 물든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릭을 벼랑 끝으로 몰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디에서 들려오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앞뒤양옆 사방, 팔방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벨져, 작은형, 벨져, 벨져 홀든. 벨져를
부르는 각양각색의 음성에 릭의 것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그 목소리들에서 릭이 구분할 수 있던건 벨져의 형제인 다이무스나 이글,
유독 기억에 남았던 제레온 정도였을까. 사람들은 여전히 릭의 품에 안긴 사람을 부른다. 벨져 홀든이라는 자와 연결되어있던 사람들의
목소리. 벨져 홀든을 여기까지 오게 한. 릭 톰슨은 생각한다.
문은 닫혔다. 벨져가, 그가 그리도 원하던 대로 문을 닫았다. 올곧게 뻗어온 섬광이 도달한 종착지였다. 두 사람은 어둠 속에 남았다.
품
에 안긴 어린 벨져 홀든을 응시한다. 앞에 서는 적을 모두 무릎 꿇게 하던 그에게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 부러트릴 수 있을
것 같은 가느다란 목도, 팔다리도, 그저 부드러울 살도. 릭 톰슨이 기억하는 완성된 벨져 홀든이 아니었다. 한참을 미완성이던
시절로 돌아간.
분명 벨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벨져 홀든이라는 자가 이 사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다고
누구나가 알고있지 않던가. 그래서, 그런데 그 결과가 이거라고? 웃음으로 뱃속이 끓기 시작한다. 조금씩 끓던 충동이 입밖으로
터져나온다. 우습게도 입술 사이로 샌 그 소리는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릭은 어깨를 떨며 힘없이 몇 번 웃음소리를 내뱉고는, 작아진
신체를 품 안에 꼭 끌어안는다. 우스운 일이군, 모든 것이, 그렇지 않소? 하얀 이마에 입술을 짓누르며 속삭였다.
당신을 아는 사람들이 지금 당신 모습을 보면 뭐라 할까. 비통해할까 아니면 비웃을까. 어느 쪽이건간에 유쾌하지는 않다. 상대가 누구건간에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으므로.
그런 생각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벨져를 부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더욱 좋지 못하게도 발소리까지 섞이기 시작했다.
릭은 자신이 어떻게 이 공간으로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길은 불명이었으나 어떤 수였든 이곳에 있는 이상 입구는 있겠지. 그 곳을 통해 누군가 지금 들어온다면….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릭을 선택으로 내몬다. 결정은 빨랐다.
들
지 못하는 검 두 자루와 무거운 어깨갑주는 내버려둔 채 적당히 옷가지와 거적때기 같은 망토만을 주워든다. 그것들로 작아진 벨져를
감싸고, 한 팔로 안아 올린다. 릭은 늘상 그랬던 것처럼 포탈을 열려 했다. 손을 뻗어 공간을 비튼다. 그때였다.
눈앞에서 공간이 터졌다. 완벽하게 이어질 새도 없이. 순식간에 팽창하고 수축하더니, 폭발했다.
그
야말로 찰나였다. 터진 것은 공간이기에 잔해는 남지 않는다. 누구도 이런 어둠 속에서는 그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나 릭은
능력을 사용하는 술자였기에 자신이 이은 공간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손이 저릿거렸다.
방금 그건. 릭은 눈을 깜빡인다. 저도 모르게 벨져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능력을 제어할 수 없었다. 숨을 쉬듯 사용해온 힘이었건만. 제법 긴 세월을 이 능력과 함께 했음에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고삐를 무시하고 폭주할 정도라니. 이상하리만치 힘이 강력해져있다. 술자의 제어력이 어쩌지 못할 만큼.
그렇다고 이곳에 가만 있을 수는 없다. 릭은 결심을 굳히고 다시 한 번 신경을 집중했다. 조금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약간 멀찍한 곳으로 공간이 회전한다.
불러일으킨 어둠이 새카만 칠흑 속에서 뱅글뱅글 돌아간다. 우주를 작게 모은 구멍이 조금씩 몸집을 불린다. 천천히 걸어 그 속으로 몸을 던졌다.
아
래로 떨어지는 감각. 아까와는 또 다른 어둠이 몸을 감쌌다. 옆을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별을 본다. 공간의 터널을 이렇게 길게
떨어진 적이 있던가. 옅은 공포가 뇌리를 스친다. 목표로 한 지점은 릭의 자택이다. 다만. 이 끝이 그곳으로 이어져있을 것이라고
지금의 릭은 장담할 수 없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길 시간이었다. 눈을 감는다. 저 아래에서 냉기가 불어닥쳤다. 호흡을 멈춘다.
릭과 벨져는 허공에서 떨어졌다.
차
가운 겨울의 한기가 폐로 훅 들어온다. 입가로 하얀 숨이 흐트러졌다. 순식간에 피부로 스며드는 냉기에 망토로 감은 벨져를 더욱
품으로 끌어당긴다. 몸이 파르르 떨렸다. 걸친 옷이라곤 고작 하얀 티셔츠와 검은 자켓, 청바지가 전부다. 춥지 않을 수 없다.
12
월 초. 높은 벽돌 건물 사이의 좁은 골목이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이 붉게 물들어간다. 눈의 기색이 짙다. 릭은 가만 인파가
스쳐 지나가는 대로 쪽을 보고 자세를 바로해 바닥에 앉았다. 지금 당장 눈이라도 내리지 않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버티지 못할
추위까지는 아니어도 복장을 갖춰야 할 필요가 있겠지. 품에 안은 벨져를 잠시 바닥에 내리고 제 자켓을 씌워 그 위를 망토로
가려준다. 벨져를 데리고 골목을 나갔다간 쓸데없는 시선만 잔뜩 집중될 테니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얼굴까지 망토를 덮으려던 순간, 눈꺼풀이 떨리고 벨져가 눈을 떴다. 서늘한 푸른 눈에 가느다랗게 릭의 얼굴이 비친다. 숨이 막힌다.
손바닥으로 식은땀이 배어나온다. 눈을 깜빡이는 것도 잊고 벨져의 시선을 그저 받아치기만 했다. 긴장 탓에 심장이 뛴다. 자꾸만 흔들리는 눈동자를 들키지 않으려 애를 썼다.
숨을 들이킨다. 먼저 말을 건넨다.
"일어났소?"
벨져는 눈을 깜빡거릴 뿐 대답이 없다. 아직 흐릿한 초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말을 잇는다.
"그대를 조금 더 따듯한 곳으로 데려가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해. …말하기 부끄럽지만. 지금 능력이 제어가 되지 않아."
"…릭.?
"잠시 여기 있을 수 있겠소? 금방 옷을 사서 돌아오도록 하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벨져를 두고 그 자리를 뜬다. 아니 도망쳤다. 거리를 달린다. 제정신을 차린 벨져가 무슨 말을 할지 가만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
행이라면 다행일까.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필연인지. 익숙한 거리였다. 거리로 나와 얼마 되지 않은 사이에 릭은 그 사실을
알아챈다. 몇 년 전, 축제가 한창이던 이곳에 잠시 들렀다. 잡지에서 사진을 보았던가. 릭의 여행이 늘상 그러하듯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다시 와볼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추운 겨울에 반소매 차림으로 거리를 달리는 릭을 호기심의
시선이 쿡쿡 찌른다.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신경쓸 새도 이유도 없었다. 가장 먼저 보인 곳으로 들어가 적당히 추위를 막을 만한
옷가지를 집어든다. 릭 자신이 걸칠 검고 두꺼운 코트. 벨져에게 입혀줄 코트나 바지 같은. 사야 할 것들을 전부 집어 들고서야
가진 금전이 걱정되었다. 침을 삼키며 눈을 가늘게 뜨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꺼낸 지갑에는 생각보다 돈이 두둑하게 들어있다. 언제
이렇게 넣어놨지? 그런 의문도 잠시. 잡념을 털어버리고 계산을 마쳤다.
코트에 팔을 끼우고 가게를 나선다. 가게에 들어갔던 짧은 사이에 하늘에서는 작은 눈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한 모양이다. 릭은 많지 않은 사람들 사이를 가르고 아까의 그 골목으로 향했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히죽거리는 얼굴을 어쩔 수가 없다. 누군가 그렇게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까.
분명 기쁜 것은 사실이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드디어 손에 넣었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기분이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벨져가 처한 가엽고 비극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벨
져 홀든이 이 전쟁의 끝을 위해.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스스로의 모든 것을 소모했다는 사실을 릭은 알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누구나가 이기적이고 오만하다 평했던 청년이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 시작을 끝으로 이었다. 그에겐 그만한 명예가 주어져야
했다. 설령 그러지는 못할지라도 이제 평온한 생활이 찾아와도 좋았을 것이다. 릭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이던가.
한없이 미완성이고 보호받아야 했던 모습으로 회귀한 검사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두 검을 들지 못할 것이다.
그가 아니면 들 수 없을 것들이었기에 릭은 새카만 어둠 속에 그것들을 버려두고 왔다. 무거운 어깨의 장식도 떼어놓고, 지금 그가
가지고 있을 것은 기껏해야 거적때기 같던 망토와 몇몇 옷가지만이 전부다. 벨져는 아마 지금에야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나 자신을 갈고닦기에 여념이 없던 사람이.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무로 되돌려진 지금을 어떻게 느낄까. 절망이라는
단어는 벨져 홀든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고 다시금 잘 벼린 검이 될 수 있도록 나아갈 길을 수정하겠지. 다만 그
과정을 다른 사람이 그대로 내버려 둘 지는 알 수 없다.
적이 많은 사람이다. 벨져 홀든이 지극히도 무력해진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 사람은 사방에 깔렸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의 집안이 보호하려 한다 한들. 그렇기에 릭은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숨기기로 했다……. 아니, 이 모든 논리가 자신이 벨져 홀든을 구속할 변명임을 안다.
원인도 대의도 아무래도 좋다. 그저 그렇게나 원해온 사람을 곁에 두고 있을 수 있다면. 본심은 틀림없이 이쪽이었다.
벨
져는 릭이 그를 두고 온 그 자리에서 꼼작도 않은 채 릭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의 그림자에 숨듯 옆으로 누운 어린 신체. 옷을
가져왔소. 그 앞에 무릎으로 섰다. 벨져는 작은 목소리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릭은 작게 웃는다. 그렇군. 더 이을
말은 없었다.
목에 감긴 헐렁한 크라바트를 풀고, 사온 털옷과 코트, 바지를 입혀주었다. 크라바트에 묻혀있던 목걸이는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아직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유약한 육체는 그저 릭이 일으켜 세우는 대로 일어나고,
팔을 들리고, 옷을 입혀진다. 릭을 바라보는 두 눈은 그저 조용하다. 분노도 감사의 말도 없다. 릭은 그 정적에 감사했다.
그저 가벼울 뿐인 신체를 안아 올려 골목을 나선다.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이 모든 것을 릭에게 맡긴다. 마치 짐짝을 나르는 기분이군. 그리 웃으니 벨져가 작게 코웃음을 쳤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날은 점점 추워진다. 으슬으슬 노출된 살갗으로 느껴지는 한기는 지금 이 복장으로는 조금 참기 힘든 정도로 춥게 느껴진다. 다른 가게에 들러 목도리를 두르고 모자를 씌워주었다.
쉴 새는 없다. 만약 그 곳에서 누군가 능력의 잔해를 발견한다면. 잘못하면 추적당할 위험이 있었다. 릭은 지친 몸을 이끌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복
잡한 역 밖에 잠시 벨져를 기다리게 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급하게 시간표를 훑어본다. 그리고 가장 먼 곳으로 향하는 차표를
끊었다. 일단 목표는 있다. 티켓에 찍힌 목적지는 이곳에서 다시 한참이나 북쪽. 출발은 두 시간 뒤. 벨져를 데리고 기차에 올라탄
시각은 밤이 다 될 무렵이었다.
야밤의 열차엔 손님이 드문드문하다. 4인석. 옆자리에는 가방을 두고, 자신과 마주보는
자리에 벨져를 앉혔다. 이마를 다 가리던 검은 털모자를 벗기고 목도리를 풀어준다. 그리고 손을 놓자 거진 녹아내리다시피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지만 늘어져있다는 표현이 옳을까. 몸에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니 어쩔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졸린 듯 깜빡이던 두눈이 조금 씩 더 내려앉는다. 릭은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넷…….
숫자가 스물을 셀 즈음 두 눈이 완전히 감겼다. 그제야 릭의 몸에서 긴장이 풀린다.
입에서 깊은 숨이 푹 새어나온다. 등받이로 등을 기대고 의자 깊숙이 몸을 묻는다. 문득 내려다본 시계는 출발시각으로부터 삼십 분이 지난 시각을 가리킨다. 도착까지는 아직 한참 멀다.
조
금 있다가 차량의 불이 꺼졌다. 작은 비상등만이 바닥을 밝힌다. 덜컹거리는 열차 안이 밤으로 물들었다. 얼마 안 가 멀리서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릭의 녹색 눈이 느릿하게 어둠에 익숙해져갔다. 하얀 머리카락은 밤에도 작은 빛을 모아 옅게 떠오른다.
액자를 쫓아갔던 메트로폴리스에서 만난 사내다. 첫 만남은 네 시간. 고작 네 시간을 함께했다. 릭 톰슨의 인생에서 손에 꼽힐 만큼 강렬한 네 시간이었다.
첫
눈에 반했다거나. 그런 낭만적이기만 한 감정은 아니었다. 그저 멋대로 생각했을 뿐이다. 이 청년이야말로 자신을 원래 있던 장소로
데려다 줄 빛이라고. 시작은 그런 제멋대로인 기대에 가까운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것이 언제부터 연정이 되고 소유욕이 되었던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두 눈이 어둠 속에서 희망을 보려고 하얀 청년을 쫓는 동안 마음의 형태는 조금씩 바뀌어갔다.
그를 향한 일반적인 평판과는 다른 면모에 이끌렸다. 벨져 홀든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릭은 직감하고 있었다.
벨
져 홀든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있을 사내가 아니다. 아니, 릭 톰슨만이 아닌 그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다. 사사로운
감정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제 길만을 나아가는 저 청년이 한 사람에게 제 감정을 부으려 할 리가 없었다. 첫 생각은 그러했다.
그런 릭의 직감은 벨져를 알 만큼 알게 된 지금엔 빗나갔다면 빗나갔다고도 할 수 있으나 결과적으로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생각했던 이유와는 약간 달랐지만 릭 톰슨이 벨져 홀든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므로.
릭 톰슨과 벨져 홀든의 관계는 약간은 친구같은, 상당히 사무적인 관계였다. 릭은 그렇게 생각한다. 비록 셀 수 없을 만큼 살을 섞었으나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벨져와 릭은 조금도 서로의 감정을 나누지 못했기에.
벨
져의 두 눈은 항상 어떤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옆에서 녹색 눈으로 그 시선을 보았다. 그가 보는 사명과 나아갈 길은 오로지 한
남자를 위한 것이었다. 누구도 벨져를 길에서, 무대에서 내려오게 할 수 없다. 벨져는 제레온 프리츠의 제일가는 신도이자
추종자였다.
그렇기에 릭 톰슨은 지금 이 상황에 약간의 의아함을 떨쳐낼 수 없다. 납치극과도 같은, 납치극이 분명한 이 도피를 그저 순순히 받아들일 이유가 무엇일까. 무슨 생각이오? 그대가 바라보던 건 내가 아니었을 텐데.
함
께 노숙을 하거나 호텔 같은 방을 쓴 적도 많다. 그럼에도 고작 잠든 얼굴 하나가 이렇게 생소하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아이가 가지는 특유의 무방비함 때문이리라. 벨져는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신이 깨어있을 때에도, 잠들었을 때에도. 저런 식으로
잔뜩 풀어진 표정을 볼 수 있는 이는 얼마 없었겠지. 제 육체를 어쩌지 못하고 쌕쌕 소리내며 눈을 감은 모습이 그가 빼앗긴 모든
것을 대변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를 자신만이 사랑할 것이다.
벨져 홀든은 릭 톰슨의 것이 된다. 온전한 형태로. 손을 잡아끌었다. 벨져는 거부하지 않는다. 벨져의 진심이 그것을 원하건, 혹은 원하지 않건. 이젠 돌이킬 수 없다. 간신히 허락된 손을 놓을 리가 없었다.
맞은편의 고개가 푹 숙여진다. 그 움직임에 머리카락이 앞으로 흘러내려왔다. 릭은 무의식적으로 머리카락을 뒤편으로 넘겨주려 손을 뻗었다가, 닿기 직전에 팔을 거둔다. 잠시 머뭇거리고는 다시 등받이로 몸을 묻었다. 눈을 감는다.
종착역을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로 울려퍼졌다. 릭은 그 소리에 눈을 뜬다. 아침이 밝아 커튼 너머로 밝은 빛이 스며들어온다. 창밖으로 하얀 눈이 쌓인 플랫폼이 펼쳐져있다. 다른 승객들이 짐을 들고 열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맞은편으로 아직도 눈을 뜰 줄 모르는 어깨를 흔든다. 벨져, 일어나시오. 얇은 눈꺼풀이 움찔거리고 무겁게 들렸다. 잠에서 덜 깬 눈이 가늘게 뜨인다. 벨져가 입을 열기 전에, 릭이 먼저 말을 건넨다.
"도착했소, 아직 조금 더 이동할 생각이지만 며칠은 여기 있어야 할 것 같아."
몸
을 앞으로 잡아당겨 모자를 씌운다. 털방울이 머리 위로 달랑거리는 것이 영 벨져와는 어울리지 않아 작게 웃었다. 그리고 목도리를
다시 감아주려 하는데, 벨져가 릭의 손에 들린 그것을 낚아챘다. 내가 할 수 있다. 그리 말하며 붉은 것을 제 목에 감기
시작한다. 꾸물꾸물 목도리를 두르는 손이 바들바들 떨었다. 릭은 한숨을 쉰다.
코트 앞섶을 다시 채워주고, 한쪽 어깨로
가방을 멨다. 그리고 릭이 묻는다. 걸을 수 있겠소? 몸을 일으키면서 손을 잡아당겨보았지만 벨져는 가만 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다. 아직 무리인 것 같군. 그러면 내 목에 매달리시오. 허리를 숙인다. 벨져가 릭이 말한 대로 그 목에 팔을 감고,
릭은 있는 힘껏 자신에게 매달려오는 몸을 들어올렸다. 팔을 하반신에 감아 지탱한다. 어린아이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그래도.
벨져가 입을 뗀다.
"조금 낫군."
릭은 조금 더 가까이 몸을 끌어안으며 코트 위로 등을 쓸어준다. 열차를 내렸다.
어제보다 몸이 가벼워. 다행이군. 릭. 왜 그러시오. 날이 차갑다. 겨울이 다 된 탓 아니겠소. 벌써 겨울이던가. 날짜조차 모르다니 벨져경답지 않은 소리군. …너는 따듯하군. 체온이 높다는 소리는 많이 들어.
오
늘따라 말이 많다. 이렇게나 잘 조잘거리는 사람이었던가. 릭은 시선을 내린다. 작아진 등을 바라보며 가만 생각했다. 아니면 작아진
몸에 걸맞게 응석이라도 부리는 건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도 해답은 알 수 없겠지. 이따금 보드라운 볼이 릭의 목 언저리로
닿는다. 들어올린 몸의 무게도 잊고 길을 걸었다. 벨져답지 않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시답잖은 소리에도 모두 답하면서.
얼마
지나지않아 호텔을 결정했을 땐 이미 말은 멎고 작은 숨소리만이 들려오는 상태였다. 벨져, 여기로 할까 하는데. 호텔 카운터에서
잠든 벨져에게 말을 걸어보았지만 눈은 뜨일 생각을 않는다. 자제분이 많이 피곤하셨나봐요. 아, 먼 길을 왔거든요. 멋쩍게 웃으며
방을 잡는다.
길에서도 몇 번을 잠들었다 일어났다 반복했으니 적당히 부르면 다시 눈을 뜰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침대 위에 내려놓는데도 영 반응이 없는 것이 완전히 잠든 모양이다.
작
은 호텔의 침대에서 잠든 벨져를 보며 릭은 자신의 턱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이렇게 계속해서 자고 깨고를 반복하는 건 그만큼 체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겠지. 어디로 도망갈 염려는 덜었으니 나쁘지만은 않지만 역시나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다음 계획을 생각한다. 조금 더, 북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눈여겨봐두었던 지역이 있다. 한적하고, 중심부에서 떨어진. 숨을 죽이고 은둔하기에 좋을 곳. 그곳의 어디에 거처를 둘지 정보가 필요했다.
아
직 문이 닫히고부터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다. 릭은 벨져를 찾는 이가 얼마 없을 거라 예상하였으나 실제는 닥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찾으려는 이도 있을 수 있고, 혹은 흠을 잡으려 찾는 이도 있을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능력을
완전히 제어할 수 있게 될 때까지는 어떻게든 몸을 숨기고 있을 심산이었다.
벨져를 침대에 재운 채 탁상에 가방의 내용물을
전부 털어놓는다. 가방에 들어있던 것이라고 해봤자 별거 아닌 간식거리나 벨져가 원래 입고있던 옷가지가 전부다. 옷가지를 가지런히
개고있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반짝거림이 있었다. 그가 크라바트에 달아두었던 푸른 브로치다.
벨져의 서늘한 눈과 잘 어울리는 색이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푸른색이 아름답지 않다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잘 어울린다 하니 작게 코웃음만 치던 기억이 난다. 브로치를 크라바트에서 떼어 손에 쥐었다.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왔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 적당한 여행사에 발을 들였다. 한동안 쉴 곳을 찾고 있소만. 원하는 지역과 함께 그리 말하니 직원은 종종걸음으로 자료를 한가득 들고왔다.
대
략적인 위치는 이미 생각해두었다. 그곳에서도 더욱 깊숙한 곳일수록 좋다. 인적이 닿지 않는 곳으로. 비용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면적도 화려함도 상관없고 그저 시간을 죽일 곳이면 충분하다. 오랜 시간은 필요 없다. 몇 달. 아니 몇 주만이라도. 능력이
조금만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설명을 늘어놓으려 하는 직원을 만류하고 제 손으로 종이를 뒤진다. 이것저것 매물을 뒤적이며 마음에 드는 것을 몇 개 추렸다. 오늘 하루 고민해보겠소. 자료의 사본을 건네받아 거리로 나왔다.
릭
은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벨져의 크라바트를 장식하던 브로치를 팔았다. 보석상은 푸른 브로치를 가만 들여다보더니, 릭과 그것을
번갈아본다. 척 보기에도 값어치가 나가는 물건인데, 손님은 이걸 어디서 손에 넣으셨습니까?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것이오, 사연이
있어서…. 그렇군요. 질문은 그걸로 끝이었다. 상당한 대금이 손에 들어왔다.
보석상에서 호텔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객실로 돌아와 열쇠로 문을 열었다.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잠들어있던 벨져가 침대에 앉아있었다. 달칵. 문이 완전히 닫힌다.
"어딜 다녀왔지?"
어
조가 날카롭다. 릭은 침대로 걸어가 그 앞의 융단이 깔린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았다. 그리고 릭이 다가오는 사이에 침대로 걸터앉은
벨져의 손을 잡는다. 본 연령에 맞는 신체를 가졌을 때보다 한없이 어려진 손의 감촉은 말그대로 아이같이 보드랍다. 항상 벨져
쪽이 차가웠는데. 밖에 나갔다 온 탓인지 지금은 릭의 체온이 더 낮게 느껴진다. 차가운 손으로 따스한 온기가 스며든다.
푸른 눈이 커다란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가만 보고는 눈을 치켜떠 릭에게 시선을 돌린다.
"손이 차갑군."
"잠시 나갔다 왔소. 우리가 있을 곳을 알아보러."
릭
이 미소로 답했다. 흐음. 무표정한 벨져의 속내는 영 알기가 힘들다. 시선은 어느새 다시 내려가, 제 손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그저 차가웠던 커다란 손은 벨져의 그렇게까지 따듯하지는 않은 손에 제법 미지근해졌다.
"그대가 하고다니던 브로치가 제법 비싸게 팔리더군."
굳
이 지금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내뱉은 건 약간의 짓궂음이었다. 제 물건을 멋대로 남에게 팔아넘긴 자신에게 어떻게 반응할지. 그런
호기심이다. 푸른 눈이 릭의 눈과 마주친다. 벨져의 눈에 담긴 릭의 모습은 어딘가 일그러져있었다. 릭은 그런 자신을 외면하며
말을 잇는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이제 내가 계속 곁에 있을테니. 그저 내 옆에 있는 걸로 충분해. 그대에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감싼 손을 세게 쥔다. 릭은 약간 아래에서 벨져를 올려다보았다. 벨져 또한 그저 조용히 릭을 응시할 뿐이다.
쓸
데없는 말이었다. 브로치따윈 실수로 두고 왔다 거짓을 말해도 충분했을테니까. 그럼에도 이런 말을 내뱉은 건 벨져가 너무나 그답지
않게 릭에게 고분고분하기에 짓궂게 시험하고 싶었던 탓이다. 벨져의 본심인지 아니면 약해진 탓에 매달리며 약한 소리를 한 건지.
하
지만 본심이라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릭은 벨져가 자신에게 보이는 순종적인 면모를 전혀 믿지 않는다. 릭이 기억하는 벨져
홀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아니던가. 벨져는 누구에게도 복종하지 않는 사내였다. 물론 벨져가 거짓을 말하리라 생각지도 않지만,
나서서 릭에게 배를 보일 거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동시에 벨져가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깨닫고 저를 따르기를
원하니 여러 감정이 뒤섞인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자신에게 복종하라는 강압적인 선언에도 벨져는 눈만 깜빡일 뿐 대꾸하지 않는다. 릭의 짙은 녹색 눈을 빤히 바라보는 속은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릭은 그 너머를 보려 했다. 서늘한 푸른 빛 너머로 무언가 보일 것만 같았다. 조금만 더. 저도 모르게 집중하려던 순간, 정적을 깨고 벨져의 목소리가 닿는다.
"맞는 말이군."
작
은 웃음소리. 벨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옅게 웃는다. 두 눈이 다시 맞닿은 손을 담는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손을 릭의 손에서
빼어냈다. 하얀 손이 헐렁한 셔츠 아래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머리 위로 벗는다. 그 동작이 느릿하게 이어진다.
그것은
곧이어 릭의 손에 쥐어졌다. 릭은 멍하니 고개를 내려 제 손에 담긴 것을 본다. 무언가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였다. 벨져의 손이
릭의 손가락을 접어 그것을 손 안으로 쥐어준다. 고개를 들었다. 뭐라 할 틈새도 없었다. 침대에서 미끄러지다시피 주르륵 내려온
몸이 릭의 목에 매달렸다.
"이게 더 돈이 될거다."
완전히 저에게 체중을 싣는 신체를 허리를 끌어안아 고정한다. 목걸이는 손에 쥔 채로. 목에 감긴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안다. 아직 약한 육체이기에 아프거나 괴롭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기묘한 감각이다. 항상 밀면 밀었지, 다가온 적은 없던 사람인데.
"이상한 기분이군."
작아진 등을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로 다시 허리를 감쌌다. 그에 호응하듯 벨져가 볼을 맞댔다.
"뭐가 이상하지?"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매달리다니. 아주 이상하지 않소."
그대에겐 나보다 더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혀끝까지 올라온 말은 억지로 삼킨다.
"달라진 건 없다. 릭. 모든 것이 끝났을 뿐. 네가 말한 대로, 나에겐 이제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가느다란 두 팔이 릭의 머리를 감싼다.
"이제 나를 어디로 데려갈 건가? 릭 톰슨."
벨져 홀든이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던가. 그런 놀라움마저 느낄 정도로 달콤한 음성. 귓가를 간질이는 소리에 릭은 깜짝 놀라 허리를 잡고 작은 몸을 떼어놓는다. 벨져. 부르려던 순간, 입술이 닿았다.
작은 입이 몇 번이나 릭의 입술을 빨았다. 작은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딱히 혀를 얽은 것도 아닌 유치한 입맞춤일 텐데 순식간에 몸으로 열이 오른다. 뒤통수에 묻은 손가락이 갈색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이거 위험한데. 젖은 혀가 입술을 핥는다. 동시에 억지로 몸을 떼어 놓았다.
불
만스레 미간을 좁히는 벨져를 억지로 다시 재웠다. 약해진 게 다행은 다행인 건지. 침대로 눌러놓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씌운 채 잠시
누르는 것만으로도 금세 잠이 오고 몸에서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버둥거리기야 했지만 크게 위협적일 리 없었다.
한숨을 돌리고 협탁 옆의 의자에 몸을 내린다. 여행사에서 가져온 자료를 위에 펼쳐 놓는다. 글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깜짝 놀랐군."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다. 심장이 뛰었다. 고작 이런 일로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철없지는 않은데도. 하지만 이 느낌은 순수하게 첫사랑을 겪는 아이라기보다 무슨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놀라움에 가깝다.
벨져가 먼저 릭에게 입을 맞춘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칼을 들이대며 협박해도 이런 일이 생기기는 쉽지 않을 거라 추측했던 상황이다. 옆으로 돌아누운 채 잠든 뒷모습을 곁눈질한다.
벨져. 그대가 나를 이렇게까지 좋아했던가?
떠
오르는 의문을 목 뒤로 삼킨다. 릭이 기억하는 벨져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살을 섞은 횟수야 많았지만 이런 식으로 기묘한
달콤함을 수반하는 경우는 없었다. 항상 사무적이고, 애정을 나눈다기보다 욕구를 처리한다는 표현이 적합할 행위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던 상대다. 분명 다른 이보다 훨씬 호감을 두고있다는 자각은 있었으나 그게 다였다. 벨져는 릭을 바라보지 않았고 그저 몸이나마 허락받은 것에 만족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벨져가 변모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본질은 여전히 릭 톰슨이 원했던 벨져 홀든 그대로일 것이다. 근거가 확실한 믿음은 아니지만 릭은 자신의 직감에 자신이 있었다.
한
없이 의자에 앉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자료와 씨름을 했다. 소거법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을 모두 쳐내고 결국 잠이 든
시각은 새벽녘이 다 되어서였다. 그것마저 서너 시간 후에 눈이 뜨이고 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 별수 없이 눈을 완전히 뜬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한 시각의 옅은 빛은 두꺼운 커튼에 가려 닿지 않는다.
꿈조차 이상했던 것 같다. 무슨 꿈이었더라. 상체를 일으키고 손으로 이마를 감쌌지만 무언가 먹먹한 감정만이 가슴을 조일 뿐 구체적인 내용은 도통 떠오를 생각을 않는다.
가
만히 눈을 감으면 밤보다 짙은 어둠이 몸을 감싼다. 물론 그 어둠이 문 앞에서 보았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기묘한
어둠이었다. 빛 한 점 남기지 않고 전부 삼켜버리면서도 몸의 윤곽은 뚜렷했다. 모든 것을 검은 장막으로 가리는 밤과는 다르다.
그것을 어둠이라 해도 좋을지 릭은 모른다.
자꾸만 가슴이 뛴다. 묘한 조바심이 릭의 불안을 부추겼다. 무엇이 이토록 불안한지 릭은 자신의 불안 자체가 불길하게 느껴졌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의 커텐을 걷는다. 빛이 들어왔다.
침
대 위로는 등을 둥글게 만 어린 신체가 가로누워있다. 청년이었던 그가 입던 셔츠가 아닌 호텔의 헐렁한 가운이 살갗을 가린다.
이불을 슬쩍 걷어보아도 벨져는 그저 잠에 취해있을 뿐이었다. 팔다리는 그를 문앞에서 건져냈을 때보다 약간 길어진 듯 했다. 다시
이불을 어깨까지 덮어준다.
작은 냉장고를 연다. 결국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웠던 탓에 어제 사온 샌드위치는 전부 고스란히
냉장고에 남아있었다. 그것을 꺼내 탁상 위에 두고 작은 쪽지를 적는다. 아침 대신이오. 그리고 채비를 하고 호텔을 나섰다. 아직
아침이 이른 시각이다.
밤 사이에 또 눈이 내린 모양이었다.
거리가 새하얗게 물들어있다. 릭은 산책 겸 거리를 걸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조여들어가는지.
대답을 발견하지 못한 채 거리에서 시간을 죽였다. 벤치에 앉아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흐르고, 거리로 사람이 늘어갔다.
여행사가 문을 열자마자 발을 들여 계약을 끝마쳤다. 웃돈을 주고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니 모레쯤부터 사용이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모레라. 릭은 역에서 가져온 시각표를 살핀다.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그럭저럭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즈음이었다.
달칵. 문을 연 순간. 무언가와 부딪혔다. 복부로 닿은 감각에 고개를 내린다. 검은 털모자가 아랫배 언저리에서 흔들린다. 벨져가 고개를 바싹 들었다. 눈이 마주친다. 푸른 눈이 가늘어진다. 릭도 놀라 얼굴을 찌푸렸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금 늦게 왔더라면. 그런 불안이 심장을 조인다. 그대로 몸을 밀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벨져가 엉거주춤 뒷걸음친다. 문을 닫는다. 등 뒤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어딜 가려 했소."
저도 모르게 낮게 깔리는 목소리를 어쩔 수가 없다. 눈에 힘이 들어간다. 뒤로 한 발 더 물러나려는 어깨를 꽉 붙잡아 막았다. 벨져는 입을 살짝 연 채 말이 없다. 한참이나 눈싸움을 하다가 드디어 벨져가 입을 열었다.
"…너를 찾으러 가려던 참이다."
대답을 듣고도 릭은 얼마 동안 손을 놓지 않았다. 파란 눈을 빤히 바라본다.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한숨이 푹 나왔다. 힘이 풀어진다. 무릎을 바닥에 대어 눈높이를 맞추고 팔을 벌려 끌어안았다.
"미안하오. 잠이 부족하니 날카로워지는군."
툭툭 등을 서너 번 두드린다. 재차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벨져는 그다지 화가 난 것 같지도, 그렇다고 당황한 것 같지도 않았다.
피로가 순식간에 몰려왔다. 눈꺼풀이 무겁다. 침대 위로 엉덩이를 내려 걸터앉는다. 스프링이 삐걱인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벨져가 그 앞에 선 채 릭을 바라본다. 릭. 부르는 소리에야 정신을 차리고 미소 지었다.
점
심시간을 넘긴 시각이다. 나가면서 다시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 놓은 탓에 방 안은 살짝 어둡다. 시선을 돌리니 분명 식사 대용으로
남겨두었던 샌드위치도 고스란히 그대로 있었다. 위치마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건 기분탓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포장은
커녕 손조차 대지 않은 듯 했다. 릭이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쉰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군?"
"식사는 필요 없다."
"어제 저녁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을 거 아니오. 이래서야 언제까지고 나에게 안겨 다녀야겠군."
벨
져의 어깨를 잡아 테이블 앞으로 질질 끌었다. 작은 테이블 옆 의자에 억지로 앉히고 샌드위치의 포장을 벗겨 앞에 놓아준다.
불만스레 바라보는 푸른 눈을 무시하고 말로 강요한다. 이거 잡으시오. 제 말에도 빤히 릭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다. 릭은 그 손을
억지로 잡아 펴고 샌드위치를 들려주었다. 그래도 거들떠도 안보는 벨져의 입에 가져다 누르기까지 한다.
"뭘 먹어야 움직일 수 있지 않겠소. 난 잠시 눈을 좀 붙여야겠어. 출발은 내일이오."
입이 우물거리는 걸 확인하고야 릭은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이불조차 덮지 않고 벌러덩 누운 채 손등으로 눈을 가린다. 넓지 않은 객실은 한없이 조용하다.
눈을 감으니 감각은 청각밖에 남지 않는다. 들리는 소리는 고작해야 샌드위치 포장이 바스락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규칙적인 소리가 피곤한 몸에 수마를 불러온다.
꿈조차 꾸지 않고 수면을 취했다. 얼마나 잤을까. 생각보다 깊게 빠졌던 잠은 예상치 못한 상황과 함께 깨어졌다.
민감한 곳으로 느껴지는 감촉에 눈을 떴다. 비싸다곤 할 수 없는 호텔의 약간 얼룩덜룩한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길게 이어진 빛의 길은 아마 커튼의 틈일 것이다. 그 길로 뽀얀 먼지가 빛을 받아 빛났다.
고요한 심장
디스아너드네타
마부님이랑 이야기했던 디스아너드AU. 죽는이야기있음. 아주AU(…) 충실하게
디스아너드...모르고봐도 문제는없을정도지만 디스아너드 마지 릭벨쩌러여 내맘대로ㅎ...아 여 여튼 설정 좀 제입맛대로 추가한거있고
그렇습니다. 약간의 그런...묘사는 있는데 19금은 아니라고생각합니다...
릭 하삐바...생일축하해...
릭 톰슨은 괴이한 사내로부터 심장을 건네받았다. 그 심장이 너에게 매 순간의 진실을 알려줄 거야. 사내는 그리 말한다. 심장은 릭의 손 안에서 작은 고동을 반복했다. 한손에 들어오는 붉은 핏덩이를 손으로 가볍게 쥔 채 릭은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움직이는 심장에서 피는 새어나오지 않는다. 소리가 들린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머리로 들려온 목소리에 릭은 호흡을 멈췄다. 벨져.
복수를 해야한다.
릭의 태생은 여행자다. 태어난 곳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이 나라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에게는 이상한 능력이 있었는데 공간을 비틀어 이어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인간을 이동시키거나 할 수는 없었으나 전투에는 그정도면 충분했다. 상금을 노리고 출전했던 무투회에서 어리고 푸른 두 눈은 릭에게 고정되었다. 준결승이 시작되기 전, 하얗고 고귀해보이는 아이가 릭에게 찾아왔다. 꼭 이겨야 해. 그리 속삭이며 뺨에 입을 맞추던 입술의 감촉은 놀라우리만치 보드랍다. 아이는 바다같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웃고 빠른 발걸음으로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그와 교차하듯 들어온 사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이봐, 황태자가 여기는 무슨 일이지? 릭은 그제야 아이가 벨져 홀든이라는 것을 알았다.
릭이 기억하는 벨져 홀든은 황제였다. 고향은 이웃 나라였는데 황제가 되기 위해 갓난아기 시절 양자로 들여졌다했다. 릭은 아직 황제가 되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그의 손에 이끌려 호위기사가 되었다. 까마득하게 어린 아이였다.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우승자가 된 릭의 앞에 다시 선 아이는 그리 말했다. 허리에나 간신히 닿던 시선이 올곧게 릭을 바라보았다. 릭 톰슨은 그날부터 벨져 홀든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릭을 그다지 좋지 못하게 보았다. 이방인이 황위를 물려받을 태자의 호위기사라니. 하지만 어쩌겠소 본인이 바라는 일인데. 황자도 이상한 바람이 들었어…. 들었소? 황태자가 골목에서 그 여행자에게 교태를 부렸다더군. 기질이 문란하다더니 사실인가봐. 소문은 반은 사실이었고 반은 허풍이었다. 릭은 그러한 풍문이 귓가에 들릴 때마다 쓴웃음을 지었다. 신경쓰지 마. 가느다란 두 팔이 릭의 목에 감긴다. 소문의 반은 사실이다.
릭은 누구보다 벨져의 곁에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호위 기사이니 당연한 것이었고, 호위 기사로서 있을 수 있는 거리보다 더욱 밀접한 거리를 벨져가 허가했다. 자나깨나 황제를 지켜야하는 몸이었기에 잠자리는 따로 없었다. 아니 굳이 다른 잠자리를 가질 필요가 없었다고 하는 쪽이 옳을 것이다. 침대는 하나면 충분하지, 그렇지 않아?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줄 거라 믿고있어. 제 옷을 잡아끌던 하얀 손을 평생 잊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릭은 벨져의 곁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가 황제의 관을 쓰는 모습을 몇발 뒤에서 지켜보았다. 왕관을 쓰고 홀을 들고. 예식의 틈을 타 푸른 눈이 릭을 향했다. 릭. 입술에 소리없이 떠오른 한 음절이 제 이름인 것을 릭은 안다.
벨져가 황위에 오르고 이따금 릭은 먼 곳으로 원정을 떠나야 했다. 걱정은 없었다. 벨져는 릭 못지않게, 아니 검을 다루는 솜씨나 편법을 제한 순수 전투능력은 릭보다 우위임이 분명했으니까. 어정쩡한 암살자는 그를 죽일 수 없었고 죽이지 못할 것이었다. 릭이 돌아올 때면 벨져는 자신이 나올 수 있는 한계선까지 나와 그 모습을 기다렸다. 늦었군. 입가를 끌어올리며 장난스레 말하는 그 발치에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을 맞췄다.
릭은 제 손에 쥐어진 붉은 심장을 바라본다. 그대의 피는 새파랄 것이라 누구나가 입을 모아 말했었지. 하지만 그대만큼 붉은 피를 가진 사람도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소. 우리 사이는 아주 각별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대의 피가 그렇게 따듯할 거라고 그런 식으로 알고 싶지는 않았어.
심장은 매 순간 자신이 아는 것과 알지 못할 것을 읊조린다.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릭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장은 항상 말을 잔뜩 늘어놓고는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를 귀에 새겼다.
맹세는 벨져가 스물 셋이 되던 해에 행해졌다. 릭의 생일이 되기 바로 전날. 언제나처럼 같은 잠자리에 들려던 릭을 벨져가 침대 위에서 불러세웠다. 릭, 잠시만. 그리 말하며 침대 끄트머리로 무릎을 세워 다가오는 황제의 몸에는 얄팍한 흰색 실크옷이 전부였다.
"너에게 주고 싶은 것과 받고 싶은 것이 있다."
두 팔이 릭의 팔을 잡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채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는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빛이다. 릭은 나즈막하게 웃으며 되묻는다. 말해보시오.
"너를 받고 싶어. 대신에…나를 주겠다."
"그대를?"
릭은 벨져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키스를 하고 살을 나눈 사이다. 잠자리를 하나로 한 지 몇 년이 흘렀던가. 이제와서 무슨 귀여운 말을? 그리 웃었으나 벨져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하다. 나는 맹세를 원하는 거다 릭. 맹세라고? 녹색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대는 황제가 아니던가?"
황제는 맹세해선 안된다. 서로를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겠다는 맹세. 몸에 표식을 새겨 영혼에 각인하는 그 행위를 국가의 수장인 황제가 어찌 행할 수 있겠는가. 황제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언제나 나라 그 자체여야 하는데.
황제 또한 인간이니 불가능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길 사람도 없을 뿐더러 율법상으로 금지된 행위임을 릭도, 벨져도 알고있다. 그런데도 맹세를 교환하고 싶다고?
"황제가 아닌 나를. 벨져 홀든을 주겠다."
이 말을 따라서는 안된다. 벨져는 황제이고, 지금의 황제는 벨져 홀든이다. 벨져 개인의 사적인 영역은 분명 존재하나 그 이전에 그는 황제가 아니던가. 만에 하나라도 발각되었을 때 두 사람을 기다릴 것은 파멸뿐임이 분명했다. 릭 자신을, 아니 벨져를 위해서라도 이 말을 따라서는 안된다고 몇 번을 중얼거리면서도 릭은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새겨질 부위는 스스로가 정하게 되어있다. 벨져는 릭의 오른쪽 어깨에. 릭은 벨져의 허벅지 안쪽에 각인을 새기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벨져가 지정한 부위는 자신의 왼쪽 가슴이었으나, 왼쪽 가슴에 각인을, 거기까지 입에 담고는 다음 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을 철회했다. 누군가 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안타깝지만, 더욱 은밀한 곳이어야겠군. 그리 중얼거리는 벨져의 목소리가 침울하게 내려앉았다.
벨져가 먼저 릭의 어깨에 잇자국을 새겼다. 언제까지나 함께, 영혼이 닳아 없어지더라도. 혀로 붉은 피가 맺힌 잇자국을 핥으며 읊조리는 소리. 다음은 릭의 차례다. 다시 침대에 걸터앉은 벨져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길고 하얀 실크를 걷어올렸다. 릭은 무릎을 꿇고 눈앞의 하얀 허벅지를 양옆으로 잡아 벌린다. 조금의 저항도 없이 저를 받아들이는 그 사이로 얼굴을 묻는다. 릭, 맹세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목소리. 릭은 보드라운 살을 세게 깨물고 잇자국을 따라 맺힌 피를 소리내어 빨았다. 나의 영혼도 그대와 함께. 무덤까지 함께할 맹세였다.
이미 셀 수 없을 만큼 맞대었던 피부도 그 순간은 더욱 각별했다. 누구도 듣지 못하도록 소리를 죽이고 서로를 탐하기를 몇번이던가. 결합부에서 질척거리는 체액도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살이 부딪히는 감촉도 허덕이는 숨소리도 모두 둘만의 것임이 분명했다.
벨져의 손이 릭의 손을 제 왼쪽 가슴으로 이끌었다. 애석하게도 그저 깨끗하게 보존된 피부는 남은 열기로 달아오른 탓에 약간 붉다.
"네가 가까워질때 가장 평온해지는 곳이다."
살갗 너머로 전해오는 고동.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피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있다. 너에게 주고 싶었어. 속삭이는 말을 귀에 담았다.
릭 톰슨은 벨져 홀든을 잃었다. 황제가 스물 여섯이 되던 해에. 지금으로부터 머지 않은 과거에. 벨져 홀든의 심장은 영원히 멈췄다.
암살자였다. 원정에서 돌아온 릭을 벨져가 맞이했을 때에만 해도 그런 결과가 생기리라 예측할 수 없었다. 언제나처럼 벨져가 릭을 마중오고, 공중정원으로 향했다. 하늘이 넓게 펼쳐진 곳에서 릭은 원정의 결과를 이야기한다. 이야기가 거진 끝날즈음이었다.
처음에는 빛이 번뜩였다. 번개가 꿰뚫듯 두사람 사이를 가르고 그와 동시에 푸른 눈이 순식간에 뒤를 돌았다. 빛이 날아온 방향에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으나 코앞으로 들이닥친 쇠붙이가 눈앞에서 번뜩였다.
벨져의 두 검은 언제나 그 허리춤에 매여있었기에 벨져는 능숙한 손길로 검을 빼들었다. 앞을 가로막은 날에 부딪힌 쇠붙이들이 소리내어 바닥으로 떨어지고, 양손은 다시 한 번 검을 고쳐 잡는다. 릭은 주변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누구지? 날아온 방향을 보아도 도통 잡히지 않는 자객의 모습이 불길하다. 앞을 견제하는 벨져의 뒤에서 사방을 훑어보았으나 그저 조용할 뿐이다. 어떻게 된 거지? 같은 의문을 품은 푸른 눈과 시선이 맞으려던 찰나. 벨져의 코앞으로 다시 한 번 공간이 굽었다.
곁으로 뛰쳐나가려던 릭의 앞을 검은 망토의 그림자가 가로막는다. 벨져의 검이 자객의 공격을 받아치는 소리가 정원에 울려퍼졌다. 릭은 제 앞을 막은 그림자를 상대하면서도 주의를 벨져쪽에서 떼지 못했다.
순간이었다. 벨져가 검을 올려치는 것과 동시에 그 뒷편으로 다시 공간이 일그러지고, 다른 누군가가 뒤에서 벨져의 등을 찔렀다. 몸이 무너진다. 릭의 가로막던 그림자가 모습을 감춘다. 릭은 한걸음에 달려가 가까스로 쓰러지는 벨져의 몸을 지탱했다.
그 와중에도 검을 손에서 놓지 않은 황제는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심하게 떨리는 몸은 그 상태가 썩 좋지 못하다는 증거였다. 자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벨져의 복부는 꿰뚫린 부분에서 흘러나온 피로 새빨갛게 물들어있다. 입가로 선혈이 흘렀다. 바람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칼날이 허공을 찢는 소리. 사방에서 들리는 죽음의 기척 앞에 릭도 벨져도 속수무책이었다. 아무리 릭 톰슨이 다른 이는 가지지 않은 능력을 가졌다 해도 그 이상가는 능력을 가진 자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사적으로 릭은 벨져를 감쌌다. 저를 감싸는 릭을 밀치며 벨져가 고개를 든다.
릭, 도망쳐라.
쥐어짜듯 내뱉어진 소리에 이어 핏기없는 입술 사이로 피가 왈칵 쏟아졌다. 뒤에서 뻗어온 손이 벨져를 잡아당겨 릭에게서 떨어트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붉게 물든 검으로 그 몸을 찔렀다. 푸른 두 눈이 크게 뜨이고, 감긴다. 릭의 뒷통수를 누군가가 후려쳤다.
릭은 벨져의 시체를 거두지 못했다. 황제의 시체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거리에 파다했다.
황제 시해의 범인으로 몰린 건 역시나 그 자리에 있던 릭이었다. 그 자리에 쓰러져있던 릭을 병사들이 끌고갔다. 릭은 쓰러져있던 사이에 무의식의 세계에서 괴이한 사내를 만났다. 사내는 심장과 힘을 주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쓸지는 네가 정할 바지. 사내는 웃는다. 뭐가 어떻게 된거지? 심장의 목소리. 익숙한 목소리에 릭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아껴준 황제를 죽이다니 배은망덕한 놈. 역시 타지인은 별수없다니까. 들었나? 죽은 황제에게 정인이 있었다더군, 아니나다를까 허벅지에 그게 있다더라니까, 각인이 말야. 역시 황제가 음탕하다는 소문은 사실이었어….
누명이 릭의 명예를 더럽혔다. 벨져가 죽은 시점에서 말뿐인 자신의 명예따윈 아무래도 좋았으나 벨져의 고결함까지 더럽혀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릭은 그저 복수를 위해 행동했다. 괴이한 사내가 준 심장을 손에 들고, 사내가 증폭시킨 제 능력을 십분 활용하면서. 벨져가 언젠가 릭에게 주었던 단검에 피를 묻혔다. 심장은 그 손에서 진실을 떠들었다.
늦은 밤. 릭 톰슨은 홀로 투기장에 섰다. 처음으로 벨져 홀든을 만났던 자리에서 밤바람을 맞는다. 아직 작은 아이였던 황제는 이제 세상에 없다. 상석에서 저를 내려다보던 푸른 눈동자는 이제 영원히 감긴 채다. 곧 복수는 달성될 것이다. 벨져에게서 목숨과 왕관을 앗아간 자를 왕좌에서 끌어내고 심장을 도려낼 심산이었다. 그 자리는 릭에게있어 벨져 홀든을 위한 자리였다. 벨져가 그곳에 앉아 이따금 옆에 선 제 모습을 곁눈질하던.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는 릭의 손에는 붉은 심장이 들려있다.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는 릭의 귓가로 심장이 속삭인다. 익숙하고 그리운 벨져 홀든의 목소리로 진실을 읊는다.
"투기장. 사람과 사람을…때로는 사람과 다른 것을 싸우게 하는 장소군. 인간의 유희는 때로 지극히 당연한 도덕윤리조차 잊게 만들곤 하지."
눈을 감는다. 이 음성을 조금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억해야 했다. 사전마냥 자신이 보았던 사실과 보지 못했을 사실, 느꼈던 감정을 털어놓는 이 핏덩이는 벨져 홀든의 잔상이었다. 시체조차 갖지 못한 릭이 가질 수 있던 유일한 것이다.
"한참 어렸을 무렵이군. 선왕은 결투를 즐겼다. 항상 나를 옆자리에 앉히고 웃으며 박수를 쳤지. 나는 관전이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남의 피를 보는 게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결투를 끝까지 지켜보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나는 일을 충실히 해야 할 자리에 있었다. 따분하고 불쾌했다. 슬슬 앉아있기도 괴로워질 때였다. 그곳에서 너를 본 건."
문득 시작된 자신의 이야기에 릭은 시선을 내려 손에서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심장을 바라본다. 손을 올려 마주한다. 소리는 이어진다. 귀가 아닌 머리로 듣는 소리가. 그대로 릭의 영혼에 새겨진다. 어떤 잡상도 감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릭은 심장이 담담하게 읊어내려가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었다.
"첫눈에 깨달았다. 너를 가져야 한다고. 나를 너에게 주어야 한다고.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꼭 이겨야 해.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아직 한참 어렸던 벨져의 음성. 지금 막 속삭인 것처럼 귓가로 재생되는 목소리. 누구나 피도 눈물도 없는 황제라 했지만 릭에겐 그저 사랑스러운 벨져 홀든이었다. 누구도 믿지 못할 말과 호의를 릭에게 전하는 그 솔직함이 다른 사람에겐 잔혹함으로 비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 나는 사실을 말할 뿐이다. 눈을 찌푸리던 표정을 기억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었다. 누구도 알아선 안될 비밀이었다.
그가 자신의 것이라고. 자신이 그의 것이라고. 벨져 홀든은 릭 톰슨의 것이었고 릭 톰슨은 벨져 홀든의 것이었다. 그리 속삭였던 맹세는 어디에도 공표될 수 없는 둘 만의. 둘 만의.
손이 떨린다. 호흡이 차오른다. 대화는 나눌 수 없다. 잔상은 그저 자신의 진실을 릭에게 떠들 뿐이다. 자꾸만 입가에서 맴도는 그의 이름을 억지로 삼키며 릭은 붉은 핏덩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내 마음을, 요동치는 심장을 평온하게 만드는 건 너뿐이었다. 네가 가까울 때 내 심장은 가장 평화로웠어."
이야기는 한 번 끊겼다. 이제 끝난 건가. 릭이 눈을 감으려는데, 부르는 소리가 울렸다.
릭.
호흡이 멎는다. 시간도 함께 멈추고, 릭은 입술을 꾹 다문다. 시야가 뿌옇게 흐린다. 입가가 둥근 미소를 만들었다. 마지막 구절을 듣는다.
"너를 사랑했다."
2015.12.13
when you are near my heart is at peace
디스아너드으으으 딸내미가 있어야하지만 차마 그거까진 쓸수없었다....
릭 생일축하해(...)
리백 통합인포 http://blog.naver.com/cottonsmilk/220551062389
밤이 가기 전에 한 번 더
R19/13x19/100P전후
릭벨. 웹재록입니다.
가필을 좀 하고 어...일단...그렇습니다 좀 고쳐쓴부분도 있을예정
예정인건 아직 하고잇기때문이조...제목 넘 길게지은것같다
담벨/글벨같은 요소 쫌 섞여있는것들 있어여 주의
표지는 마부님(@eaglet2775)이에여~~!
수록 리스트
[밤에 젖은 바다](R19) 15.03.06
[짙은 비가 내린 날에] 15.03.09
[어떤 A의 고백](R19) 15.05.03
[어떤 B의 결말 | 1 / 2(R19) / 3(R19) / 4(R19) ] 15.05.31~06.04
통합인포는 이쪽 > http://blog.naver.com/cottonsmilk/220551062389
그림자에 묻어둔 풍경
R19/13x19/52P
담벨. 20다무x17벨져. 다무 임무에 따라가는 벨져.
좀 건실...??한 다무와 빗ㅊ같은 벨져...사이안좋은이야기.
그런느낌
표지는 칵님(@holden_is_mine) 이에여!!
다이무스는 제 아버지가 하는 말에 고개를 젓지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제 효심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던가.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아버지의 판단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그 판단이 너무나 탐탁지 않다. 도저히 좋은 판단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 녀석에게 그런 역할이라뇨 저는 반대입니다. 수많은 반박이 혀에서 맴돌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늘 같은 아버지의 명령인데. 다이무스는 아버지의 명령에 고개를 저을 줄을 모른다. 아니 저을 수 없게 길러졌다. 차마 한숨조차 쉬지 못하고 눈을 감는다. 아버지 제발. 그런 바람도 부질없이 아버지의 말이 이어진다.
역시 네 동행으로는 그 아이가 좋겠군.
회사에서 들어온 요청에 다이무스가 나서게 되었다. 열차를 타고 꼬박 사흘. 나름대로 장거리를 가야 하는 일정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아직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 필요했고― 그 적임자로 이제 막 가문의 규칙에 따라 회사 일을 돕기 시작한 다이무스가 호명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젊은 청년이 홀로 비싼 호텔에 숙박하기에는 의심의 시선이 달라붙으리라. 누군가 함께하여 위장하는 편이 좋겠지. 돈 많은 젊은 귀족 부부의 사치. 고급 호텔에서라면 드문 일도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러면 그 아내 역할은 누가 할 것이냐. 다이무스는 딱히 누군가를 떠올리지도 않았고 아버지나 회사가 그 누구를 지정해도 묵묵히 따를 예정이었으나 이번에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아내 역할로 지정된 사람이 다름 아닌 첫째 남동생 벨져 홀든이기에.
뭔가 문제라도 있느냐? 그 이상 적절할 사람이 있다면 말해 보거라 다이무스. 가족이니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고 아직 벨져 정도면 어린 부인으로 변장시킬만하지 않겠느냐. 어설프게 아예 모르는 사람과 장단을 맞추느니 벨져가 편할게다.
일리는 있다. 맞는 말이다. 정말 부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부부 행세를 하는 것뿐인데, 뭐가 문제겠는가. 다만 다이무스는 아버지가 모를 벨져의 사생활까지도 아주 잘 알고 있기에 문제였다.
올여름, 벨져는 훈련을 끝마쳤다. 홀든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홀든의 훈련이라는 게밖에 떠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집안에서만 알려진 이야기였지만 그만큼 가문의 기대도 크겠지. 아버지로서는 슬슬 벨져를 회사에 내보이고 싶은 욕망이 강할 것이다.
분명 벨져가 적임자다. 하지만. 그래도. 벨져와 단둘이? 끔찍한 농담이다.
저녁이다. 열차는 밤이 다 되어 출발하게 되어있었다. 새카만 어둠이 앉은 플랫폼을 밝히는 가스등이 몇 개. 다이무스는 그 가스등 중 하나의 아래에 있었다.
플랫폼에 쌓아둔 짐 옆에서 한숨을 내쉰다. 기차에서 며칠. 현지에서 또 며칠. 현지에서야 호텔에 내버려두고 혼자 다니면 될 노릇이지만 엎어지면 코 닿을 기차에서 어떻게 닷새나 함께 있어야 하나.
작게 혀를 차는 다이무스 곁으로 구둣발소리가 다가온다. 또각또각. 높은 굽이 닿는 소리. 크지는 않지만 분명 일부러 내는 소리였다. 지옥의 개막이다. 어떻게든 애써 무시하려 하였으나 어깨를 톡톡 치는 손길에 결국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춘다.
저녁의 어둠 속에 불빛을 받아 더욱 눈에 띄는 화사한 흰 드레스. 맞춘 듯한 하얀 챙 모자, 푸른 수가 놓인 부채. 부채를 활짝 펴 제 입을 가리는 모습에서 흐르는 품격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누구나가 한 번쯤은 뒤돌아볼 법한 용모였다. 딱히 아름답거나 그런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넘치는 묘한 색기라고 해야 하나.
다이무스 또한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한 번쯤은 돌아보며 멀어져가는 모습을 눈에 새겼을 법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저게 같은 피가 흐르는…첫째 남동생 벨져 홀든만 아니었다면.
“내가 늦었나?”
작게 웃는 목소리는 확실하게 변성기를 거친 남성이다. 입가로 옅은 미소를 띠며 즐거워 보이는 동생을 앞에 두고 다이무스는 그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얄미운 녀석. 눈을 찌푸린다. 하지만 이제 정말 도망갈 구석도 없다.
“그래서, 나랑 결혼한 기분은 어때?”
벨져는 그런 다이무스의 속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 제 형을 송곳으로 쿡쿡 찔렀다. 최악이군. 네 글자가 머리에서 맴돌았지만 말로 해봤자 벨져만 웃고 즐거워할 뿐이겠지. 더이상 벨져의 즐거운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다이무스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두 사람의 사회적 관계는 지금부터 며칠간, 형제와는 전혀 다른 형태를 띠게 된다. 평소라면 첫째와 둘째라 소개되었어야 했을 관계는 다이무스 홀든 경과 그 부인. 닮은 외모는 적당히 사촌지간에 결혼했다고 둘러대게 되어있다.
아내를 향한 불쾌감을 숨길 생각도 않는 남편과 생글생글 즐거워 보이는 아내. 타인이 보는 두 사람은 그렇겠지.
“너 같은 놈을 아내로 둘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벨져.”
쌀쌀맞은 목소리였으나 벨져는 흐음. 하고 작은 소리를 흘릴 뿐이다.
“너무 쌀쌀맞은 거 아냐? 친동생한테.”
“네가 내 앞에서 무슨 추태를 부렸는지 기억한다면 그런 말은 못 할 텐데.”
다이무스의 말에 벨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무슨 뜻이지?”
정말로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걸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이무스의 입에서는 한숨이 흘렀다. 땅이 꺼져라 푹 내쉬고, 고개를 젓는다.
“그런 몸으론 정숙한 부인은 이미 글렀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내가 걸레라고?”
순간 손이 먼저 나갔다.
“벨져.”
붉은 화장품을 바른 입을 엄지와 검지를 벌려, 틀어막는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자국이 남는다. 다이무스는 그제야 주변을 눈짓으로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플랫폼에는 두 사람 이외에 아직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동생을 직시한다.
“입, 다물어라.”
목소리는 강압적이다. 벨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불만스레 시선을 돌렸다. 그 입에서 손이 떨어진다. 다이무스가 제 손에 묻은 붉은 화장품을 지우는 동안 벨져는 고개를 돌리고 약간 흐트러진 화장을 고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다시 입을 열었다.
“아차. 그랬지. 이제 ‘우리 둘’만 남기 전에는 말을 하면 안 되겠군. 형아야?”
눈을 가늘게 뜨며 깃털과 보석이 치렁치렁한 부채로 제 입가를 가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귀부인이다. 그러면서도 말끝에 형을 꼬박꼬박 붙이는 모양새는 다이무스를 조롱하고 있는 것이겠지. 벨져가 입을 다물고, 거기서 대화가 끊긴다.
겉치레로 잔뜩 챙긴 의미 없는 여행 가방들. 그 짐들을 사이에 두고 다이무스와 벨져는 거리를 둔 채 섰다.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두 사람을 흘끗흘끗 보는 시선이 다이무스를 불편하게 한다. 팔락팔락 덥지도 않을 가을날에 부채를 흔드는 벨져는 그저 덤덤하기만 했다. 아니 뻔뻔하다고 해야 할까. 둘째의 썩 좋지는 못한 성격을 생각하면 후자겠지.
짐을 사이에 두고 서먹한 시간이 이어진다. 서먹하다기보다 아무 말도 없다고 해야 할까. 생각해보면 언제나의 다이무스와 벨져 그대로다. 아무런 말도 없이 서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그러면서도 다이무스는 벨져에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옆에서 보기에는 제법 재미난 광경인 걸까. 슬슬 플랫폼으로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시선이 쿡쿡 박힌다. 어리게 보이는 부부가 짐을 잔뜩 두고 서먹하게 있으니 부부싸움 도중인 것 같기도 할 테고 퍽이나 재밌어 보이겠지. 주변에서 쏟아지는 호기심 어린 시선에 다이무스의 미간으로 주름이 깊어져 간다.
답답한 공기가 무겁게 깔린 채 출발시각이 가까워 온다. 아직인가. 다이무스가 손목시계를 들여보던 찰나, 한 청년이 두 사람 곁으로 쪼르르 달려왔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홀든 경과 부인…되시나요?”
모자를 벗어 인사하는 청년은 집안에서 고용한 짐꾼이다. 서글서글하니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었다. 다이무스 쪽으로 고개를 두면서도 흘끗흘끗 벨져쪽을 흘기는 시선에는 짙은 호기심이 어려있다.
그다지 늦은 건 아니다. 다이무스의 인상이 퍽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거겠지. 땀을 뻘뻘 흘리는 청년의 위아래를 가볍게 훑어보고, 그 시선이 제 동생, 이 아니라 아내에게서 떨어지지 못하는 것도 확인한다. 그 끝에서 벨져가 다이무스를 보고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입가는 부채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뻔하다면 뻔하다.
“…그렇다. 늦었군.”
부인이냐 묻는 말에 답하는 데에도 제법 시간이 걸려버렸다. 그 모습을 본 벨져가 또 웃는 기색이 느껴진다. 청년은 고개를 몇 번이고 숙이더니, 벨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허리를 깊게 굽힌다. 다이무스에게 하던 인사보다 정도가 심한 꼴에 묘하게 붉어진 얼굴. 재밌다는 듯 벨져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다이무스와 시선이 마주친다.
“짧은 기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부인.”
청년의 인사에 벨져가 잠시 눈을 깜빡이나 싶더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인사에 영 답이 없는 벨져에게 청년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인? “
“지병 탓에 말을 하지 못한다.”
“앗, 제가 실례되는 짓을 하고 말았군요.”
청년이 고개 숙여 사죄했다. 다이무스는 제가 둘러댄 핑계임에도 그저 웃음만이 나왔다. 지병 탓에 말을 못한다고? 말이나 못하면 귀엽기라도 할 텐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말을 억지로 삼킨다. 옆에서 먼 곳을 바라보는 벨져가 또 웃은 것 같았다.
다이무스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다. 다섯 살 어린 이글 홀든, 그리고 세 살 어린 벨져 홀든. 이 중 첫째 동생인 벨져 홀든에게는 좋지 못한 버릇이 있다. 몇 명이나 그 버릇을 알고 있을지는 불확실하나, 적어도 아버지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겠지. 알고 있었더라면 벨져를 이런 자리에 내보낼 리가 없다. 제아무리 아버지가 벨져를 싸고돈다 하더라도. 아니 싸고돌기 때문에 더더욱.
다이무스 홀든은 제 첫째 동생인 벨져 홀든의 사적인 비밀을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감히 말하기 힘든 비밀을.
치익거리는 시끄러운 증기와 함께 열차가 플랫폼으로 진입한다. 바람이 크게 일고, 옷자락이 펄럭였다. 다이무스는 눈앞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풍성한 드레스 자락을 가만 바라본다. 어깨 살짝 아래로 흔들리는 하얀 머리카락은 다이무스와 같은 색깔이다. 다이무스와는 다른 푸른 눈은 다이무스를 보지 않는다.
출발 준비가 끝나고 승차신호가 울렸다. 평소였다면 몇 개쯤 들고 탔을 법도 한 짐도 지금은 모두 놓고 열차에 오른다. 다이무스가 먼저 계단을 올라 아래에 있는 제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별로 높지도 않은 계단이다. 혼자서 다 잘만 하는 놈을 데리고 이런 같지도 않은 놀이라니. 눈이 절로 찌푸려졌으나 별수 없는 일이었다. 벨져의 하얀 장갑을 낀 손이 다이무스의 손에 얹혀졌다. 그 손을 끌어올린다. 벨져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 손길을 따랐다. 이 순간부터 눈앞의 동생은 더이상 동생이 아니어야 한다.
예약해둔 객실은 열차의 머리 쪽에 있다. 4인용 개실. 끝에서 올라타, 반대편 끝으로 향한다.
가장 뒤로 따라오는 고용인이 짐을 들고. 맨 앞은 다이무스가, 그 뒤를 벨져가 따른다. 지정된 객실로 향하는 동안 많은 사람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칸을 거듭할수록 사람이 적어진다. 사람들의 복장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칸쯤 들어섰을 무렵엔 제법 귀족이다 싶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몇 칸을 걸쳐 오는 동안 지독하리만치 많은 시선을 받았다. 그 시선의 태반은 다이무스보다 그 뒤의 벨져를 향한 것이었으나, 벨져를 본 다음에는 꼭 다이무스를 훑어보았기에 다이무스가 대상이 아니라 할 수도 없다. 귀족인가? 두 사람을 본 누군가가 숙덕였다. 많은 소리가 귓가를 오간다. 어머 예뻐라. 부부인가 봐요. 어디 출신이지? 분명 악의없는 칭찬들임에도 말은 가시가 되어 다이무스의 귀에 박혔다. 슬쩍 돌아본 동생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싱글 웃고 있다. 왜? 벨져의 소리 없는 질문이 귓가에 닿는다.
누구도 눈앞에서 아내행세를 하는 이 여자가 다이무스의 남동생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 누가 보아도 정숙하고 품위있는 귀족 집 부인으로 여기겠지. 이게 남자라는 사실은, 하물며 친동생이고 한술 더 떠서 그런 짓이나 하고 다니는 녀석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무도. 단 한 명도. 드레스 자락을 끌어올리며 살포시 허리를 숙이는 이 숙녀가 피가 이어진 남동생이라고는.
변장이 완벽하다고는 하지만 벨져의 모습은 가능한 한 외부에 보이지 않는 편이 좋다. 다이무스는 개실에 들어서자마자 벨져를 내버려두고 객실을 나와 주변을 잠시 돌아다녔다. 괜히 기밀을 유지한답시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다가 쓸데없는 호기심을 사는 것보다야 먼저 가면을 내보이는 편이 낫지 않겠나. 그런 회사 측의 조언을 따른 행동이었다. 기웃거리게 만들 바에는 적당히 호기심을 죽이라는 뜻이겠지.
아까 같이 계시던 분은 부인이신가 봐요? 아 네, 사촌입니다. 그렇군요 아름다운 분이시던데, 부럽네요. …말씀 감사합니다.
잠시 돌아다니기만 했는데도 이런 대화를 몇 번을 했던가. 저 속 알맹이를 알면 할 수 없을 말들이었다. 부러우면 얼마든지 가져가시죠, 드리겠습니다. 그런 말도 목 언저리에서 아른거렸으나 차마 내뱉을 수는 없을 노릇이다.
간단한 인사를 건네는데에도 상당한 정신력이 소모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객실 앞에 서서, 다이무스는 눈을 찌푸리고 살며시 감는다. 문을 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망설이는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봤자 눈에 띄기만 할 뿐이겠지. 어차피 도망갈 수 없다면 부딪힐 수밖에. 결심을 굳히고 문을 연다.
이질적이라면 이질적인 풍경이다. 검붉은 벨벳 시트로 덮인 좌석. 그 위에 앉은. 새하얀 모자, 머리카락, 풍성한 드레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하얗게 치장한 저 숙녀 아닌 숙녀, 가 제―부인이라니. 물론 알맹이는 얄밉기 그지없는 첫째 동생이지만 그래도 다이무스는 임무에 집중하려 애써 회사가 정해준 설정을 떠올렸다. 얼마 전 배우자가 된 사촌 동생. 사촌 동생. 물론 식조차 올린 적이 없는 몸으로 배우자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형식적인 인사만으로도 제법 정신력이 소모된 듯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동생 겸 아내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현기증이 나다니. 다이무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등 뒤로 객실 문을 닫는다.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공간이 닫혔다.
좁지는 않지만 넓다고도 할 수 없는 공간. 중요한 짐은 선반 위에, 두 사람의 검은 꽁꽁 싸매어 채 의자 옆 작은 틈에 기대어두었다. 모자를 벗은 벨져가 창가로 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다. 동생이 입은 하얀 드레스는 영 적응이 되지 않는다.
다이무스가 반대편 자리에 몸을 내린다. 창밖을 바라보던 푸른 눈이 흘긋 제 형 쪽을 흘기고, 다시 밖으로 향했다. 유리창 너머는 새카만 밤이 내려앉아 불빛 하나 없이 그저 어두울 뿐이다. 창 위로 벨져의 얼굴이 비친다. 아까의 기분 나쁘게 생글거리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표정 하나 없다.
바퀴가 덜컹거리는 소리. 이따금 들리는 경적.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 걸친다. 시간이라도 죽일까 싶어 가져왔던 책을 무릎 위에 펼쳤다. 다시 슬쩍 동생을 살피니 벨져는 어느새 고개를 숙이고 잠들어있다. 의자가 그리 비좁은 것도 아니다. 옆으로 누워서 자도 괜찮을 텐데. 그러면서도 하얀 드레스에 살짝 찌푸린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눈을 감은 모습이 지극히도 벨져 홀든답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린다. 가져온 책은 소설이었는데, 어째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가 나오고…그리고. 안경이 흘러내리는 감촉에 안경을 다시 고쳐 쓴다. 열차가 크게 흔들렸다.
자세가 흐트러진다. 다이무스는 익숙하게 균형을 잡았다. 때가 아닌가 싶어 한숨을 쉬고 책을 덮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다. 안경을 안경집에 넣고 답답하게 채웠던 단추를 몇 개 끌러냈다. 아까의 흔들림 탓인지 벨져의 두 팔이 검붉은 시트 위로 툭 떨어져 있다. 잠에서 깰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객실을 밝히던 등을 끄고 손걸이에 머리를 댔다. 덜컹거리는 작은 소리를 귓가에 담으며 눈을 감는다. 작게 쌕쌕이는 벨져의 숨소리가 귀에 닿았다.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한창 겨울이었다. 일주일 전에 내린 첫눈을 잊기도 전에 정원으로 다시 눈이 쌓였다. 이제 열두 살이 된 막내는 신이 나서 정원으로 뛰쳐나갔다. 다이무스는 중무장을 한 막내의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내려다보며 한숨을 쉰다. 뒤에서 작은 웃음소리.
“뭐가 그리 재밌어?”
열네 살 먹은 첫째 동생이 뒤에서 키득거리며 웃고 있다. 더 골치 아픈 동생의 등장에 다이무스는 눈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 말해도 벨져는 웃음을 멈출 생각을 않는다.
벨져는 요즈음 부쩍 키가 컸다.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팔다리에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지 가뜩이나 듬직하다고는 하기 힘들었던 몸이 더욱 말라 보인다. 막내는 멀어지는 작은형의 눈높이가 못마땅했는지 볼을 부풀리고 툴툴거렸더랬지. 다이무스의 성장에 맞춰 한참을 벌어졌던 신장 차도 완전히 줄어든 건 아니지만, 한창때보다는 가까워졌다.
옆으로 다가온 벨져가 창밖을 내다본다. 가슴 언저리로 하얀 정수리가 내려다보인다. 정원에서 꺅꺅거리며 뛰어노는 막내의 모습이 푸른 눈에 비친다. 유리창으로 첫째와 둘째의 모습이 반사된다. 벨져의 손이 붉은 커튼을 잡아당겨 창을 가렸다. 하얀빛이 커튼을 지나 붉게 변한다. 첫째 동생이 붉은 그림자에 가려지는 순간을 보았다.
하얀 옆모습이 붉게 물든다. 두 손은 아직 커튼을 쥐어 잡고 있다. 빤히 붉은색을 바라보던 푸른 눈이 조용히 옆으로 돌아 다이무스를 향했다.
카탈로그 부스컷
11/28(토) 리백예정...을 미리 적어둡니다
꼬알님이랑 트윈부스에여~!
1. 기미님(@89880CP)주최 벨른 앵스트앤솔 <Cynical Blue> https://twitter.com/xBelzer_7
담벨루 참가해여 10P...인데 편집에따라 쫌 바뀔수도있을것같은
2. 릭벨 R19 역할놀이 합동지 <Ready, Queue!> https://twitter.com/RB6_R19
선생x제자로 참가합니다
3. 개인지는 아마 10코때 못들고간 담벨이랑 릭벨 하나일것같아여
담벨은 다무랑 벨져가 사이안좋은 기차여행하는 내용이고 릭벨은 종전후 벨져데리고 릭이 튀는 이야기.
구간은 물이 없는 일주일(7월/릭벨), 블루 시퀀스(8월/담벨글), 세컨드 오필리어(10월트윈지/모브벨져) 욜케 들구갈것같습니다 사실은~이건 넘 적게남아서 아마 예약?만 쫌 받구 책상위에는 안올릴것같아여
4. 굿즈는 평소보다 적게들구갑니다 책상이모자랄것같은느낌
옹누 맘보
제책은 아니구요 옹보님과 맘누님의 트윈지를 위탁합니다.
표지는 제유님( @jjuholden )이라고 합니다.
http://manbounikki.tistory.com/114 R19부분 샘플은 이쪽
R19/문고판(13*19)/72P/소설
서로 이어집니다. 벨져가 안타리우스의 시설로 추정되는 곳에 들어갔다가 잡혀서 고생하는 이야기.
그냥 Yㅑ설...입니다 샘플 옆에 적어둔거 대강 봐주시고 안맞는게 있다 싶으시면 패스를.....
전프레루 엽서를 드립니다...
샘플은 편집/교정 안되어있습니다.
옹보님 파트 샘플 촉ㅅ...비인간...山란...윤ㄱ...
벨져는 외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섰다. 조용한 내부 안에서 이따금씩 사람 말소리나 발소리 따위가 들려왔기 때문에, 풀잎이 바람에 바스락대는 소리조차 그의 곤두선 신경을 긁어댔다.
인적이 드물다 못해 오지나 다름없는 깊은 숲 속 한가운데 커다란 폐공장이라니, 보기 드문 화려한 무대였다. 곧 안타리우스의 꼬리가 밟힐 중요한 순간인 만큼 숨소리조차 낮게 죽인 벨져의 눈빛이 사냥을 시작하는 짐승처럼 고요하게 요동쳤다.
벨져는 외벽에 등을 붙이고 천천히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숨어들었다. 이곳이 그들의 본거지인 만큼 홀로 움직이는 것은 용이한 한편 위험부담도 컸다. 그는 내부에 숨어들어 연락을 취한 뒤 급습하는 동료들과 합류하는 편이 좋을지 고민하면서 지하로 통하는 것 같은 수로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수로 안으로 미세하게 바람이 통하고 있는 모양인지 웅웅, 공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벨져는 주저 없이 그 안으로 어깨를 들이밀었다.
발밑에 찰박찰박 밟히는 물웅덩이 위를 한참이나 걸었을까, 구부정하게 수그린 목이 당길 즈음해서 더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좁은 철 계단이 나타났다. 그 끝에 있는 작은 문은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이런 곳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비상시에만 이용하는 통로인 듯 했다. 아무튼 이 곳을 알아냈으니 꽤 괜찮은 수확이었다.
여기저기 녹이 슨 계단은 발을 디딜 때마다 이끼가 밟혀서 미끄러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한참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벨져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코를 찌르기 시작하는 악취 때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체가 썩는 냄새라기 보단 썩은 풀 더미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짙게 배어있다. 생소한 냄새는 낯설기까지 해서 이상한 불안감을 조성했다.
벨져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서자 조그만 철문이 아주 오랫동안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벨져는 그 문 앞에 서서 정말 훌륭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숲, 폐 공장에, 그 아래에 나있는 수로, 그 끝에 건물과 통하는 허술해 보이는 작은 문. 그야말로 차려진 밥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덫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제 와서 일을 그르칠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덫이라는 걸 알고 들어가는 건 오히려 상황을 역전시킬만한 키워드였으므로 걸어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벨져는 녹슨 철문을 어깨로 밀었다. 쇠문이 바닥에 끌리며 끔찍한 소리를 내서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몸을 안으로 들이밀자 원래 그런 구조인건지 문이 천천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벨져는 잠시 멈춰 서서 닫히는 문을 힐끔 돌아보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새까만 어둠만이 몸을 웅크린 채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제 발로 들어가기엔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었다. 불을 켜는 것은 눈에 띌 수도 있으니 이대로 천천히 진입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을 마친 뒤 그가 천천히 걸음을 뗐다. 벨져의 발밑으로 잠시 끊겨 있던 기분 나쁜 물웅덩이가 다시 밟히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벨져는 천천히 자세를 숙이고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가까이에서 기척이 느껴졌던 탓이다. 그러나 사람의 기척이라기엔 미묘한 기척이었기 때문에 그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던 묘한 기척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벨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그와 동시에 공중을 휘젓던 것 같은 움직임도 사라졌기 때문에 공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쌔액!
공기를 빠르게 가르고 벨져를 향해 날아드는 것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벨져가 위를 쳐다보자 곧바로 무언가가 위로 내리쳐졌다. 그는 바닥에 몸을 굴려 자리를 피해낸 뒤 두 검으로 날아온 물체를 베어냈다. 쉽게 베어진 그것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벨져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를 향해 움직였다.
‘다리……?’
내부는 무척 깜깜했기 때문에 형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길쭉하면서도 뭔가 점성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칼끝에서부터 전해졌다. 일순간 짐승의 다리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육지대의 동물이 가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벨져가 생각을 추스를 새도 없이 공격이 빠르게 이어졌다. 자신의 영역으로 침범하다 못해 제 몸에 상해를 입힌 것이 자극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전보다 흥분한 것 같은 움직임이 거세게 허공을 휘저어댔다. 그 흥분한 몸짓을 가만히 바라보며 벨져가 제 위로 휘둘러지는 물체를 다시 잘라내기 위해 검을 고쳐 쥔 순간이었다.
“큭……!!!”
그는 등 위에 내려쳐 친 충격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반동 때문에 손아귀에서 떨어진 검이 저 구석에 날아가는 동안 벨져는 제 위를 짓누르는 압박 때문에 헛구역질을 했다. 흉부를 압박하는 것은 몸을 부수기라도 할 작정으로 세게 무게를 가하고 있었다. 정황을 파악하는 동안 아까 베어낸 것의 다른 다리일 것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짐승이라고만 생각해서 방심했던 걸까?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이 아래에서 빠져나가는 것만이 그가 강구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었다.
그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자 짓눌렀던 다리가 천천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벨져의 몸을 끈으로 묶듯이 그러쥐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 벨져의 몸도 긴장으로 바짝 굳어졌다. 끈적하게 들러붙는 그것이 흡사 몸을 더듬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몸에 닿고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닌 것 같았다. 검을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았다면 이런 것쯤은 이미 갈가리 찢어놓았을 것이었지만 그를 빛내는 두 검은 어느 구석으론가 처박혀 보이지 않았다. 벨져는 이빨로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바닥에 발을 굴렀다.
하지만 그런 저항쯤은 상관도 않는 모양인지, 그것은 벨져의 몸 위를 마음대로 만지며 돌아다녔다. 이게 사람의 손이었다면 다분히 성적 의미를 내포했을 만한 움직임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불쾌를 더해갔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만한 것은 입고 있는 옷이 멀쩡하게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제길…….’
행동이라도 자유로우면 다른 저항이라도 해 볼 텐데, 두 팔과 몸을 묶고 있는 것은 놓아 둘 생각도 하지 않는 듯싶었다. 지능이 뛰어난 것보다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얽어맨 뒤 살펴보는 것 같았다. 생물인지 뭔지도 알 수 없긴 했지만, 아무튼 이대로 가다가는 이것의 먹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꼴사납기 그지없는 최후일 것이라고 자조할 때였다.
“……!!!”
벨져의 허리춤으로 그것이 고개를 디밀었다. 어떻게 옷 안으로 들어올 구석을 찾았는지, 허리께로 느껴지는 질척한 느낌과 미지근한 온도가 그를 절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짐승의 혓바닥 같기도 했고, 해산물의 축축한 표피 같기도 했다. 아무튼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천천히 배 위를 더듬다가 그의 아랫배 밑으로 기어가기 시작해서, 벨져가 그 뿌리라 생각되는 쪽을 걷어찼다. 그 발길질을 제대로 맞았는지 기어들어가던 것이 재빨리 몸을 감추고 옷 아래를 뒤집던 다리를 내뺐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는 사람에게도 이런 식의 희롱은 당해본 바가 없었기 때문에 수치스러움에 목을 매고 싶을 지경이었다.
더듬고만 있는 것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재고 있는 걸까? 벨져는 그것이 저를 입안에 넣었을 때 가능한 한 통으로 삼켜주길 바라며 그 상황을 빠져나갈 대책을 세웠다. 어찌 되든 간에 이 상황은 벗어나고 싶었다. 짐승의 혀로 맨몸을 핥아지며 간보기 당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을 것이었다.
아까의 타격으로 더 조심스러워 진 건지 벨져의 몸을 죄고 있는 다리는 미동이 없었지만 주변에 그것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벨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최 이것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읽을 수가 없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렇게 시간을 써버려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눈앞이 깜깜하니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꽤 오랜 시간을 대치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모 아니면 도였다. 자극을 강행하여 이것이 행동하게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벨져가 다시 한 번 발길질을 하기 위해 앞으로 다리를 뻗었을 때였다.
“윽…!”
그의 발목을 앞에서 기다리던 것이 낚아 채 붙들었다. 바닥을 간신히 짚고 있던 한쪽 다리 역시 곧 그것들 중 하나에게 붙들려 위로 끌어올려졌다. 허공에 뜬 것이나 다름없는 자세가 되어 벨져가 몸을 흔들었다. 그가 움직일수록 몸뚱이를 쥐고 있는 것이 움직임을 둔화시키려는 모양인지 더욱 옥죄어왔다. 그것들은 스멀스멀 저들끼리 가까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벨져의 몸도 오므라졌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붙인 채 몸을 만 그의 허리께로 아까의 그것 같은 게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벨져가 이를 악물었다. 제 입에서 끔찍한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맘누님 파트 샘플 페ㄷ...여ㅊ...임ㅅ...윤ㄱ...
미열이 가시지 않는다. 사방의 어느 방향도 알 수 없는 어둠. 비릿한 냄새가 코를 가득 메운다. 무언가 코를 틀어막았다. 입안으로 액체가 부어진다. 호흡이 무겁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흐릿하다. 시간 감각이 없는 만큼 며칠이나 흘렀는지는 알지 못하나 벌써 한참이나 끝을 모르는 미로에서 헤매는 느낌이 이어지고 있었다. 분명 걷고있는 것 같은데 팔다리는 무거운 추를 달아둔 마냥 아래로아래로 가라앉는다. 동시에 묘하게 들뜨는 듯 맴도는 부유감. 상반되는 두가지 느낌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그렇게 걷고있었다고 얼마나 착각을 했던가. 어느 순간. 정신이 퍼뜩드니 몸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두 다리로 걸었던 감각 자체가 그저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시에 본격적으로 사지를 잡아당기는 고통에 숨이 턱 막혔다. 그 와중에도 열에 들뜬 머리를 때리는 두통이 여전하다.
전신을 분해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통증이다. 딱히 누군가 찢어발긴다거나 하는 외상적 아픔은 아닌듯 하였으나 내장을 쥐어뜯고 뼈를 잡아당기는 감각에 다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죽는건가? 이대로? 이런 곳에서?
문득 그런 예감이 뇌리를 엄습했지만 벨져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한다. 이런 곳에서 죽을 리는 없다. 죽을 수 없다. 아직 해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어깨에 실린 짐이 가득하다. 여기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릴 만큼 자신은 한심하지 않다. 검을 들고 적을 베어야 한다.
눈이 감기고 기억은 물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사노 수도원. 사명을 받던 순간. 탐색. 마지막으로 보았던 본가의 저택.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서, 오래된 수도원. 힘을 얻었던. 그곳에서 돌아가는 문을 보았다.
아직 아이였던 벨져 홀든은 멀찌기서 문을 바라보다가 몇 발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그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인지범위를 뛰어넘은 무언가임을 알았다. 끼이익.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린다. 쇠가 긁히는 소리. 깜짝 놀라 문에서 손을 뗀다. 뒷걸음질 쳤다. 문에 비치는 모습은 아직 어렸던 날의 벨져 홀든이다. 지금 든 검과는 다른 검이 소리를 내어 지면에 떨어진다.
―…져.
누군가 뒤에서 손목을 잡아 끌어당긴다. 전력으로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다시 달린다. 짤막하게 들린 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벨져는 알고있다. 정확하게는 알고있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아는 사람인데 누구라 말할 수가 없다. 다시 뒤에서 팔을 잡아 당기는 손. 확 잡채는 힘에 다리가 멈추고 몸이 뒤를 향한다. 얼굴을 보았다.
벨져 홀든!
그 소리에 호흡이 목에서 걸렸다.
퍼뜩 눈이 뜨였다. 순간 선명했던 시야가 금세 안개라도 낀듯 희뿌연 무언가가 눈앞을 가렸다. 동시에 몽롱한 기운이 머릿속에 들어찬다. 몸을 밑으로 끌어내리는 손길에 저항하려 이를 악물었다.
억지로 다시 흐릿해지려는 기억을 부여잡는다. 다시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무슨 일이 있었지? 기억의 파편을 전부 끌어모아 퍼즐을 맞춰나간다. 그곳에서. 이상한 방. 처음 보는 생물. 평생 알지 못하는게 옳았을 수치와 굴욕을 전부 맛보았다. 차라리 악몽이라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래. 누군가 자신을 주워 어딘가로 데려갔다. 데려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보였던 알지 못하는 공간. 흐릿한 시야로나마 새하얀 색채를 보았다. 큰 손이 팔목을 잡아 올렸다.
기억하는 한 그 순간부터 두 번을 더 정신을 놓았다가 다시 찾았다.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이번이 벨져가 기억하는 세번째 각성이다. 계속 눈을 감고있던 건 아니다. 분명 멀쩡하게 뜨고있던 기간도 제법 길었고, 뜨고있었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무엇을 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확실치않다.
비교적 몸이 가벼워졌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숨을 내뱉는다. 눈을 열댓번 깜빡거리고나서야 앞이 멀쩡하게 보였다. 공기가 축축하다.
환기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군데군데 철골이 드러난 벽면은 아직 이 곳이 벨져가 들어왔던 폐건물임을 말한다.
무의식중에 복부에 올린 손으로 옷과는 다른 감촉이 걸렸다. 고개만을 살짝 들어 몸을 내려다본다. 얄팍한 이불이다. 병적일 정도로 새하얀 이불이 하반신부터 복부까지를 가리고있었다. 다 무너져가는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천이 이질적이다.
좋지 못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다만 언제까지고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삐걱거리는 상체를 간신히 들어올린다. 팔꿈치로 바닥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힘이 풀린 목을 억지로 세워 고개를 든다. 나른한 손이 잘게 떨린다. 이불을 걷었다. 서늘한 냉기가 피부에 닿는다. 허나 어째서인지 그 감촉이 어딘가 둔탁했다.
식은땀에 젖어 몸에 붙은 하얀 옷감. 감촉이나 두께를 볼 때 면은 아니고 거즈가 확실하다. 어깨부터 무릎 위까지 길게 떨어지는 옷은 양 옆이 이어지지 않고 트여있었으나 군데군데 묶인 매듭이 그나마 틈을 덜 벌어지게 한다. 생활복이라기보다 연구실에서나 입을법하다. 젖은 거즈 아래로 창백한 피부가 살짝살짝 비쳐보인다. 그 밑으로 드러난 신체는 벨져의 기억과는 제법 많이 달라져있었다.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변화였으나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킬 체력조차 없었다.
팔다리는 기억보다 한참이나 얇아지고, 짧아졌다고 해야할까. 아마도 작아졌다거나 어려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벨져가 알고있는 벨져의 신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거울이 없으니 전신을 한번에 확인하기는 힘들었지만 지금당장 두 눈에 비치는 몸은 아무리봐도 성인 남성의 체격은 아니었다.
어깨가 무거워져 다시 얇은 매트위로 몸을 눕혔다.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은 열에 들떠 축축하다. 이제 두통은 한결 가벼웠다. 몸은 여전히 무언가 추라도 달아놓은 듯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설마 아직 꿈을 꾸고있나? 그런 생각마저 든다. 어느쪽이 꿈일까. 스물여섯의 벨져 홀든이 걸었던 여정이 사실은 신기루였나. 아니면 지금이? 상황파악조차 힘든 황당무개한 현실에 벨져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와 거진 맞물려 바닥을 긁는 소리. 싸늘한 시멘트 바닥위로 드르륵 바퀴가 구른다.
"정신이 들었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모르는 남자다. 허름한 회색 천장을 배경으로 남자는 벨져를 내려다본다. 하얀 가운에 두꺼운 안경. 의사나 과학자같은 인상이다.
"험한 꼴을 당했던 모양이야. 회수하라고했지 멋대로 써도 좋다는 허가는 내리지 않았었는데… 몸을 회복시키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역시 능력자는 일반인과 다른건가? 금세 몸은 좋아졌어. 흠, 그래. 어디보자… 겉모습은 합격이군. 아직 괴로워보이니 약을 한 대 더 놓아야하겠어."
혼자 주절주절 잘 떠들고는 남자가 옆에 둔 카트에 손을 놓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야로는 그 위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확실치 않다. 남자가 허리를 굽혀 쪼그려앉아, 마르고 작아진 팔을 바닥에서 건져올린다. 다른 한 손으로 투명한 호박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 뾰족한 바늘로 약물이 가늘게 솟았다.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 반사적으로 시선을 둔 하얀 팔에는 이미 붉은 바늘자국이 가득하다. 어느새? 그런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한참이나 가늘어진 팔로 주사바늘이 파고든다.
약물이 혈관으로 들어온다. 얇은 통증이 손끝까지 저며든다. 주사는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이어진 것 같다. 어느정도 감각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벨져는 신체의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그저 마르기만 한 게 아니니 단순히 근육이 빠진 탓은 아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아니면 약물? 어찌되었든 저들이 자신의 몸에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리라. 그게 무엇인지 벨져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눈을 분명 뜨고있었다. 계속 뜨고있던 인식은 있다. 갖은 약물에 절여진 머리는 그저 몽롱할 뿐 기억이 불분명했다. 흐리멍텅한 눈앞으로 무언가를 흔들었던 것 같은데. 무어라 말했던 기억도 있다. 귀로 그 말이 흘러들어왔다. 들었을 수도 있다.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이 들어왔고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기억이 없다.
주사기에 담겨있던 약물이 바닥나고, 거진 동시에 정신이 흐릿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도리질쳐보아도 눈앞이 자꾸만 아득해진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깜빡거려 정신을 유지하기위해 애를 쓴다. 종이 한겹 사이로 몸을 만져지는 감각이 이어졌다. 고무장갑의 뻑뻑한 촉감이 옷감 너머, 혹은 맨살 위로 맞닿는다. 좋아, 외견상으로는 완벽하고……. 남자의 혼잣말이 귀에 들어왔다.
"무슨 짓을 했지?"
젖어서 작아만지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 묻는다.
"네 육체를 가장 '싱싱했던' 시절로 회귀시켰어. 아, 아직 보지 못했겠네. 보겠어?"
벨져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남자의 뒤에 있던 다른 사람이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는 커다란 손으로 어깨 바로 아래를 잡아 벨져를 들어올린다. 짐짝이라도 들어올리듯 몸이 위로 이끌리고 발끝이 바닥에서 약간 뜬다. 손은 어느새 겨드랑이 아래로 가슴팍을 세게 쥐고 있었다. 그 팔을 떼어내려 작아진 손으로 팔을 잡아도 보았지만 두꺼운 팔은 꿈쩍도 않는다. 고개를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 목에 힘을 주어 멀쩡한 체를 했다. 약간 걸어 커다란 거울 앞에 다다른다.
잘 닦인 거울에 전신이 담긴다. 뒤에서 벨져를 붙든 남자와 옆에 선 안경을 쓴 남자도. 허나 그 두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을만큼, 벨져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역시 피험체의 질이 좋으니 결과도 양호해. 그렇지 않아?"
방금 전까지. 거울로는 보지 못했어도 몸을 내려다 보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랬기에 예상은 했던 광경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두 눈으로 직시하면서도 믿겨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본 벨져의 입가가 이윽고 헛웃음으로 작게 일그러진다. 작게 중얼거린다.
"악취미가 따로 없군."
실험동물의 혼잣말에 남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파란 눈을 찌푸린다.
"악취미라니. 시간을 자유로이 다루는 건 신의 권능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는 힘을 손에 넣었고 첫 제물로 너를 택했어. 영광스런 첫걸음이지. 영광에 동참하게 해줬으니 감사하라고."
호쾌한 웃음소리에 담긴 조소가 신경을 거슬리게한다. 벨져는 다시 한 번 거울속의 자신과 눈을 맞추었다. 순간 흔들리는 눈동자가 불쾌하다.
몇 살 즈음일까. 열넷? 열다섯? 10대중반이 아슬했던 시절의. 거울에 비치는건 벨져가 아는 벨져보다 한참 어린 시절의 벨져 홀든이다. 어깨폭도 신장도 팔다리도 얼굴도. 마지막으로 거울에 담겼던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작다. 거즈로 된 얇은 옷을 두른 어린시절의 자신은 마치 실험실의 하얀 생쥐와 다를바가 없어보인다.
뒤에서 벨져를 붙잡던 남자가 손을 놓았다. 서있을 수가 없었다. 휘청휘청하던 몸은 결국 다리에서 힘이 풀려 아래로 주저앉는다.
밤의 경계
(1)
패러렐?일수도 아닐수도있고. 쫌 미정. ㅁr부님이랑 ㅇ1느님이랑 이야기하다가 ㅎㅏ...넘조은...
부정기연...재..ㅇ.ㅣㅂ니다 이것도...하핫 연재를 하나 늘려버렸네 마감과 싸우면서 가끔 올라옵니다 운좋으면(...)
다음편은 아마 19금
릭벨. 바텐더 릭과 퇴폐업소 종사자(...)벨져.
왼손에는 손님이 마시다 남긴 와인병과 자질구레한 안주거리가 가득한 봉투. 빈 오른손으로 문고리에 열쇠를 넣어 돌린다. 달칵달칵. 오래된 문은 맞는 열쇠여도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몇 번을 이리저리 돌리기를 반복하고서야 열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차가운 겨울에 싸늘해진 문고리. 맨살에 닿는 냉기에 놀라는 것도 잠시고 별다른 거리낌 없이 잡아 당긴다. 다녀왔소. 아무도 듣지 못할 인사를 버릇처럼 내뱉는다. 좁고 너저분한 아파트에 먼저 도착하는 건 항상 릭이었다.
릭이 아파트에 도착하면. 그즈음 되어 슬슬 오르기 시작하는 태양빛이 창문으로 쏟아진다. 창문은 동향으로 나있다. 이 아파트는 아침을 나기에 썩 좋은 곳은 아니었다. 집값이 싼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할까. 릭은 부신 눈을 가늘게 뜬다. 갈색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두며 창가로 다가갔다. 익숙한 손길이 블라인드를 치고 그 위로 덧대어 빨간 커텐을 흘린다. 작은 아파트에는 다시 밤이 찾아든다. 해가 뜨면 시작되는 밤이다.
공간을 밝히려 켠 전등은 슬슬 수명이 다해 그 빛이 어슴푸레하다. 오후에 새로 사와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식탁위에 널부러진 식사의 잔해들을 적당히 몰아 치운다. 빵이나 몇 개 줏어먹고 나갔으니 크게 더러운 건 없지만 귀찮지 않은 건 아니다. 전부 정리하고 나갔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니,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던가. 졸다 깨서 허겁지겁 먹고 뛰쳐나갔으니 영 기억이 정확하지가 않다.
어수선한 싱크대에서 비교적 깨끗한 접시를 두 개쯤 꺼내 물로 헹궜다. 냅킨으로 물기를 닦아 식탁위에 놓고 갈색 봉투를 뒤적인다. 잘린 치즈가 담긴 비닐봉투, 육포 몇 조각에 풀만 끼워진 샌드위치. 다 식은 너겟 몇 개. 손대지 않은채 남겨져있던 음식들이 하나 둘 접시위로 오른다. 제대로 된 식사는 되지 않겠지만 아마 그도 식사를 할 생각은 없겠지.
싸구려 유리잔에 붉은 와인이 담긴다. 유리잔을 절반쯤 채우고 다음 잔으로. 그렇게 그와 자신, 두 사람 몫의 두 개의 잔에 붉은 색이 깃들었다. 릭은 의자에 몸을 앉힌다. 시간이 흐른다.
옅은 빛이 퍼진 공간에 시계소리만이 울린다. 째깍. 째깍. 그리고 간간히 들리는 제 숨소리. 동거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다.
올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릭은 벽에 걸린 시계를 흘겨보고 제 손목시계로 시선을 내렸다. 번갈아 본 두 개의 시계는 같은 시각을 가리킨다. 역시 평소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런 불안이 덜컥 뇌리를 스쳤으나 다음순간 릭은 고개를 가로저어 불안을 떨쳐냈다. 제 몸하나 건사 못할 사람은 아니다. 일 분, 이 분, 삼 분…시간이 약간 흐르고 심장을 떨게하던 릭의 근심걱정은 얼마 지나지않아 끝이 났다.
달칵거리는 소리. 릭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오래된 문이 끼익거리며 열리고, 누군가 작은 집으로 들어왔다. 그 정체는 몇 초 지나지 않아 현관을 지나 릭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 검은 코트. 그 아래로 가늘게 뻗은 두 다리 또한 검은바지를 입어 몸의 윤곽이 새카맣다. 시선을 약간 위로 올리면 반대로 하얀 머리카락과 피부가 눈에 들어온다. 대조적인 두가지 색깔을 한번에 몸에 두른 청년은 어디서도 눈에 잘 띈다. 벨져가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대충 걸었다.
"인사는 하고 들어오라 하지 않았소."
맞은편 의자에 몸을 내리는 벨져에게 릭이 쓴웃음짓는다. 벨져는 허리를 굽혀 앉다가 흘끗 눈을 들어 릭을 보았다. 추위에 질린 피부가 한층 더 희게 보인다. 동시에 반대로 약간 붉게 물든 콧등과 눈매가 시선을 끌었다. 흥. 작게 코웃음치고는 볼멘소리를 낸다.
"필요 없지 않나. 너도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테고."
"그게 둘이서 사는 의미라는거요."
들은체 만체, 벨져는 와인잔을 집어 붉은 액체를 한 모금 삼킨다. 건배는 해야지, 벨져. 릭이 웃으며 잔을 식탁에서 건져올린다. 푸른 눈이 가늘어진다. 잔을 들어올린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벨져가 릭의 잔에 제것을 가볍게 대었다. 짤그랑. 유리가 맞닿았다. 입가는 여전히 불만이 남아 약간 뾰루퉁하다.
기분 나쁜 일이 있던 모양이군. 릭은 벨져에게 시선을 둔 채 포크로 치즈를 조각내어 입으로 옮긴다. 안주를 우물거리며 입을 연다.
"평소보다 늦어진 것 같은데."
잘 정돈된 눈썹이 움찔거렸다. 반응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릭은 와인을 목뒤로 넘긴다.
"손님…, 아니, 이상한 남자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따돌리느라 시간이 걸렸어."
벨져는 그리 말하고 다시 와인을 한 입 머금었다. 짜증스레 눈을 더욱 찌푸리는 걸 보니 제법 지독한 상대였던 모양이다. 누구일까. 오늘 바에서 보았던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지레짐작한 대상을 입에 담는다.
"빨간 넥타이를 했던 남자를 말하는 거요?"
푸른 눈이 사선 아래로 회피한다. 정답이군. 와인잔을 둥글게 흔들며 벨져의 눈치를 살핀다. 릭이 보는 앞에서 붉은 입술 사이로 빨간 와인이 흘러들었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유리잔의 바닥이 식탁에 닿는다.
유독 새빨간 넥타이가 눈에 띄던 남자. 릭이 떠올려보건데 그 손님이 변질자처럼 보였냐하면, 글쎄. 제법 멀쩡해보이는…애당초 벨져의 손님은 대개가 겉모습은 멀쩡하고 돈이 많아보이는 사람들 뿐이긴 하였으나, 그 중에서도 꽤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되는 남자였다. 벨져의 아버지뻘 되는 나이였을까. 폐점 두시간 전쯤에 와서는 폐점시간이 약간 지나 릭이 퇴근할 채비를 마친 때가 되어서야 가게를 나섰다. 돈이라도 써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벨져에게 붙어있었겠지. 그렇게 완전히 떠난 줄 알았는데, 근처에 숨어있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벨져와 함께했던 한 달 동안 이런 일이 없던 건 아니다. 한 네 번정도 있었나. 이따금 벨져가 늦어질 때면 이렇게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릭 앞에 돌아오곤 했다. 서로가 몸을 담은 장소가 어떤 곳인지 다 알고 있는데. 이제와서 무슨일이 있었냐며 호들갑을 떨 일은 절대 아닐 것이다. 분명히 누군가 저 청년의 밤을 사려 했겠지. 릭은 뻔한 사실을 몰라서 물을 정도로 어리석지도, 모르는 체 그저 넘어가줄만큼 상냥하지도 않다. 벨져 또한 오늘 불쾌한 일이 있었다며 나서서 하소연을 하지는 않으나 억지로 숨기지도 않는다.
릭은 몸을 살짝 일으킨다. 의자가 뒤로 밀린다. 넓지 않은 식탁이다. 그 위를 가로질러 손을 뻗었다. 차가운 볼이 손끝으로 닿았다. 냉한 피부에 닿는 사람의 체온에 벨져가 눈을 들어 릭의 시선을 받아친다.
"그대를 사겠다고 했소?"
"알고싶나?"
"알고싶어."
턱을 쓰다듬는다. 알코올에 달아올라 그 볼이 약간 붉다.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벨져의 전신에서 풍기는 문란한 밤의 냄새. 옷에 밴 타인의 체취. 모두 모르는 체 하고 입술을 맞대어 키스했다. 벨져에게서는 알코올 냄새가 난다. 방금 입에 댄 와인과는 다른. 그리고 그 술내음에 섞인 미세한 향. 후각을 자극하는 이 향은 향수일까. 여자 것은 아니고, 요즈음 유행한다던가했던 싸한 남자 향수다. 벨져가 선호할 향은 아닌데. 아마도 그에게 들러붙었던 손님중 하나에게서 옮았으리라.
입술이 떨어지고 그제야 벨져가 속삭인다. 꽤 큰 금액을 부르더군. 릭은 제로에 가까운 근거리에서 파란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뚫어져라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썩 로맨틱하지는 않다. 그리고? 릭의 질문에 벨져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린다.
"거기에 나에게 반지까지 주겠다고 했지."
"반지가 필요하오?"
릭이 장난스레 미소짓는다. 어느새 자신의 귀를 매만지는 손길에 벨져가 반사적으로 목을 움츠렸다. 귓속으로 피부가 닿는 소리가 울린다.
"필요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돌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나? 릭."
덤덤하게 되묻는 벨져에게 릭이 짧게 답한다. 그렇군. 손끝은 계속해서 귓가를 만지작거린다.
"아니면, 나에게 반지를 줄 생각이라도?"
"반지보다 더 좋은 걸 줄 수도 있어."
릭은 벨져에게 묻는다. 침대로 갈까? 좋다. 벨져가 짧게 답했다.
릭 톰슨은 그렇게 누구도 사지 못한 밤을 손에 넣는다. 돈 한 푼 내지 않고. 아니 집을 제공하고 있으니 벨져가 내는 숙박비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다. 릭에게는 확신이 있다. 설령 집주인과 식객이 아니라 하더라도 벨져는 릭에게 다리를 벌렸으리라는 확신. 릭 톰슨이 아무런 말도,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해도 이 청년은 기꺼이 자신에게 몸을 내주었을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릭은 자신의 직감이 엇나가지 않으리라 알고있다.
아침의 하얀빛이 두꺼운 커튼 아래의 틈으로 새어들어온다. 침대 위는 아침에 벗어던진 잠옷이 널부러져있다. 손으로 대강 잡아 치우고 벨져의 몸을 끌어 성급하게 침대로 뒹굴었다. 다음은 없을 것 마냥 키스를 하며 서로 옷을 벗긴다. 벨져에게서는 여전히 릭이 알지 못하는 향수냄새가 난다. 침대를 벗어날 즈음이면 그 향도 전부 릭의 체취에 지워지겠지. 그리 생각하니 저도모르게 눈가가 가늘어진다.
이 이름모를 욕구를 무어라할까. 질투? 독점욕? 아마도 둘다 아닐 것이다. 그런 욕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그만한 애정이 선행되어야했다. 이 청년의 존재를 알게된지는 고작 두 달. 몸을 섞은지는 한 달. 질투로 활활 불탈만큼 정열적인 사랑을 하기에 부족한 시간은 아니었으나 릭은 자신의 감정이 사랑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그저. 그래. 생각치도 못하게 얻은 과일의 맛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남에게 나눠주고싶지 않을 뿐이다. 딱 그정도였다. 릭은 그랬다.
그러면 벨져는 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화제에 대해서 이미 몇 번을 고뇌했다. 허나 벨져 홀든이라는 자의 속내는 그 기묘한 몸보다도 더 알기가 힘든 것이라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대는 내가 그렇게 좋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도 표정변화 하나 없이 고개를 돌려버릴 뿐이다. 하긴 뿌리도 무엇도 알 수 없는 존재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는가. 릭은 타인에게 크게 집착하지 않는 자였기에 그 선에서 호기심을 멈추기로 했다. 어차피 살을 섞는데에 경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릭이 벨져 홀든이라는 청년을 자신의 집에 들인 건 지금으로부터 한 달쯤 전의 일이다.
청년은 그날로부터 다시 한 달 전, 그러니까 두 달 전에 불현듯 가게에 나타났다. 릭 톰슨은 벨져 홀든이 가게에 발을 들이던 순간을 목격하지는 못하였으나, 입구로부터 가게가 술렁이기 시작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릭은 옷을 갈아입던 도중이었다. 야 봤냐? 점장은 어디서 '저런'걸 주워왔대? 재주도 좋지. 몸값 장난 아니겠더라. 요즘 그렇게 장사가 안됐나? 뒤에서 들리던 다른 점원들의 조잘거림.
릭이 바에서 준비를 끝마칠 즈음, 벨져가 그 앞을 지나갔다. 헐렁한 면티에 청바지. 하얀 머리카락이 옅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평범한 사복임에도 그가 입으니 어딘가 다른 고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릭은 저도모르게 시선을 그에게서 떼지 못했다. 톰슨 씨, 들었어요? 저게 그 신입이라던데, 제발로 왔다나봐요 저 얼굴이면 더 좋은 곳에 갈 만도 한데, 왜 여기로 왔을까요. 동료가 귓띔했다. 릭은 곤란한 듯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이런 관계가 되리라고 그 누가 알았을까.
벨져 홀든 26세. 두 달쯤 전에 제발로 입고되어 쇼윈도에 걸어들어간, 릭이 일하는 가게의 상품이다. 이름과 나이. 본인이 언급한 두 가지 이외에는 모두 불명인 청년. 어깨 약간 아래로 찰랑이는 새하얀 머리카락에, 싸늘한 두 눈은 따스하고 얕은 바다의 푸른 빛이던가. 가게에 발을 들이는 누구나가 지갑을 열며 그 가느다란 허리를 제 품에 끌어안고자 소망했다. 두터운 돈다발이 몇 뭉치나 그 눈 앞에서 흔들렸다. 이런 바닥에 있지 말고 제 품에 안기라며 마른 손목을 쥐는 손은 한둘이 아니었다. 정작 본인은 필요가 없는지 코웃음치며 전부 손등으로 쳐낼 뿐이었지만.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던 때였나. 벨져는 여전히 가게에서 약간 뜬 존재였다. 어울리지 못한다기보다 존재 자체가 타 종업원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형성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하는 게 옳으리라.
벨져를 에워싼 잡음은 끊일줄을 몰랐다. 시기, 질투, 호기심. 그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주변을 맴돌았다. 그의 외모와 분위기에 이끌려 거리를 좁히려 한 사람들도 사흘이 지나기 전에 혀를 차며 멀어졌다. 누가 배좀 갈라봐, 저자식 피가 빨간색일리 없어. 얼굴을 좀 가까이 댔다가 죽을뻔 했다나. 믿거나 말거나. 제 팔에 길게 난 상처가 그 말라빠진 청년의 소행이라며 탈의실에서 소리지르던 근육질의 동료를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허나 벨져 홀든의 피가 붉지 않을 것이라 주장하는 그의 말에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릭은 당번으로 남아 가게의 뒷정리를 했다. 청소가 막바지에 이르고 쓰레기를 버리려 열었던 뒷문. 지저분한 뒷골목. 릭의 등 뒤로 새는 노란 빛이 밤의 어둠을 가른다. 그림자가 중앙으로 길게 늘어진다. 밖으로 나와 더러운 봉투 옆으로 봉투를 하나 더 세웠다. 손을 탁탁 터는 릭의 귀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도모르게 고개를 돌린다. 맑은 녹색 눈에 두 남자의 옆모습이 비친다.
척 봐도 제법 값이 나가보이는 정장을 몸에 걸친 남자. 양쪽 눈을 멀쩡히 뜬 채 그 남자의 키스를 받는 청년. 검은 코트에 허름한 청바지 차림인 청년이 아직도 말이 끊이지를 않는 벨져 홀든임은 명백하다. 가게에서 저런 옷을 입힐리는 없으니 사복이겠지. 귀찮은 장면을 목격해버렸군. 릭은 내심 한숨을 쉰다. 그 동안에도 남자의 손이 벨져의 마른 허리를 쓸었다. 목적이 확실한 손짓이다.
종업원은 손님과 잠자리를 가질 수 없다. 표면상으로는. 몰래 속옷에 웃돈을 찔러넣고 멀리서 합류하는 경우야 증거가 없으니 묵인해주고있지만 이렇게 넘어지면 코닿을 곳에서 2차라니. 과연 가게에서 제일 비싼 몸이라 더 대범한가? 그런 생각도 들었으나 어찌되었건 얽혀서 좋을 건 없다. 적당히 모르는체 피해볼까. 뒷걸음질 치려는데 그만 다리가 쓰레기통에 부딪혀 소리가 났다. 덜컹. 아차 싶은 다음 순간 뚜껑이 떨어져 바닥으로 구른다. 콘크리트 바닥으로 철제 뚜껑이 구르면서 더욱 큰 소리. 남자가 퍼뜩 고개를 돌려 옆을 본다. 릭과 눈이 마주쳤다. 릭은 양손을 가슴언저리로 들어 바닥을 보인다.
"오 이런, 내가 좋은 시간을 방해해버렸나?"
멋쩍게 입가를 끌어올렸으나 이미 남자는 잔뜩 굳어있다. 어버버 입만 뻐끔거리더니, 벨져쪽으로 눈을 슬쩍 흘긴다. 시린 두 눈의 안중에 남자는 없고 그저 릭을 응시할 뿐이다. 남자는 그대로 릭을 어깨로 치며 줄행랑을 쳐버렸다. 어둡고 냄새나는 골목에는 릭과 하얀 청년만이 남져긴다. 그제야 릭의 귓가에 닿는 혀차는 소리.
"쓸데없는 짓을."
처음 듣는 벨져의 목소리였다. 스쳐지나가는 얼굴을 본 적은 있으나 말을 나눈 적도 없고, 일하는 장소도 다르니 목소리를 들을 일이 있을리가 없었다. 낮고 조용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릭의 귀에 편안하게 닿는다. 눈이 마주친다.
푸른 눈이 릭을 흘겨본다. 그 시선에 딱히 노여움이나 분노는 없었으나 부드럽지도 않다. 한숨을 내쉬는 벨져에게 릭이 고개를 돌려 시선을 슬쩍 피했다. 턱을 긁는다. 그리고 작게 두 번 헛기침. 흠, 흠, 뭐. 뜸을 들이고 슬쩍 맑은 녹색 눈만을 살짝 벨져쪽으로 향한다. 벨져의 싸늘한 시선이 그 눈길을 받아친다. 릭이 그에 질세라 입을 연다.
"그쪽이야말로. 손님과 자는 건 규율위반 아니던가? 홀든."
릭의 말에 벨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잠시 텀을 두고. 흐음. 하얀 손가락이 제 붉은 입술을 매만졌다.
"나를 알고있는 모양이군."
"당신은 유명하니까. 가게에서……벨져 홀든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겠어?"
입술을 끌어올리는 릭에게 벨져가 되묻는다.
"그뿐인가?"
짧게나마 시간이 멈췄다. 릭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다. 차가운 두 눈이 가만히 릭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잠시 시선을 빗겨둔다.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젓는다. 그리고는 두 걸음, 릭에게 다가갔다.
아니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니군.
벨져의 혼잣말같은 중얼거림이 귓가에 멀게 닿는다. 릭은 저도모르게 뒤로 한 발 물러났으나 거기서 멈출 뿐이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비슷한 눈높이. 검은 코트 안에 입은 헐렁한 흰 티가 눈길을 끈다. 탁탁. 구둣발이 두 번 바닥을 쳤다. 릭은 그 소리에 벨져와 눈을 마주한다. 자신만만한 푸른빛에 제 모습이 비친다.
"네가 내 잠자리를 없애버렸으니 네가 책임을 질거라 생각하겠다. 정 원한다면…."
두 팔이 릭의 어깨에 닿았다. 릭은 딱히 거절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에 응답해서 안아주지도 않고 그저 벨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하얀 손이 어깨 약간 뒤로 놓였다. 그 이상은 없다. 대신 입이 열린다. 너와 자줄 수도 있고? 생각했던 그대로의 말이다. 입가에 띄우는 미소는 그에게 돈을 내는 남자들의 식욕을 돋구기에는 충분하리라. 릭 톰슨은 이정도로 당황할만큼 순진하지 않다.
대담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러고보니 누구도 벨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이 없다던 이야기도 새삼스레 기억이 난다. 딱히 살 곳을 확실히하지않고 이런 식으로 매일 밤 장소를 정했던 걸가. 그렇다면 상습범이 따로없다. 일단 발각되어서는 안될 행위이기는 하다. 설령 벨져라 하더라도 이렇게 당당하게 푼돈을 벌다가는 멀쩡하지 못할 것은 분명한데. 릭에게 들켜버렸으니 이젠 입막음으로 물귀신인가? 릭은 자신마저 늪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벨져의 권유에 쓴웃음을 흘린다.
"종업원끼리 자는 것도 규칙 위반이라는걸 모르오?"
"종업원의 규칙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는 '상품'이지, 종업원이 아니다."
"홀든."
난 종업원이오. 이어져야할 말은 형태가 되지 못했다. 고개를 저으려던 찰나. 하얗고 마른 검지가 릭의 말을 가로막는다. 말뿐만이 아닌 호흡마저 멎었다. 차가운 눈동자가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릭은 눈을 감는 것도 잊고 그 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입술에 닿는 감촉.
벨져.
청년이 제 목소리로 제 이름을 읊는다. 입술을 맞댄 채 릭은 귀를 기울였다.
좀 더 부드러울거라 멋대로 예상했는데, 막상 맞닿은 감촉은 잔뜩 메말라 까칠하다. 하지만 과연 가게에서 제일 비싼 입술이라고 해야 할까. 쌀쌀맞아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입술을 가볍게 빨아올리는 움직임에서 흐르는 색향은 그가 이런 일에 능숙하다는 지표이리라.
생각보다 훨씬 차가운 입술에 금세 릭의 체온이 녹아든다. 조금 더. 그런 생각이 들 즈음, 입술이 떨어졌다. 벨져가 한 발 뒤로 물러난다. 약간 거리가 생기고 시선이 자연스레 입술에 머물렀다. 그 눈을 붙들기라도 할 셈인지 차가운 손이 한쪽 올라와 릭의 볼을 감쌌다. 시선이 얽힌다. 파란 눈 아래의 입술이 작게 움직인다.
"벨져라고 부르도록…불러도 좋다."
속삭이는 소리. 마치 주문처럼 들리기도 한다. 싸늘한 태도를 전부 잊게 만드는 그 속삭임이 무기라고 깨닫는다. 타액이 소리내어 목 뒤로 넘어간다. 퇴로는 이제 없다고 알고있다.
릭 톰슨.
릭이 생각하는 벨져와는 맞지 않는 달콤함.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집중한다. 하얀 손이 목에 감기기 전에 허리로 손을 둘렀다. 나쁠 것이 있겠는가. 이쯤에서 백기를 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것이라 자조한다.
세상물정을 모르고 다짜고짜 돈을 원해 업계에 뛰어들었나 싶었다. 적당히 아무데나 보이는 가게를 잡아 기어들어왔고 그게 릭이 일하는 가게였나 하던 정도였다. 아니 기어들어왔다기 보다 와주셨다고 해야할까? 성격에 흠은 있어도 저정도 얼굴에 넘쳐흐르는 고상함이면 어디에 가서도 특급대우는 따놓은 당상일텐데. 바보같기는. 누구나 그리 쑥덕였고 릭도 그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같은 공간을 공유하게 되면서 그러한 추측이 틀렸음을 금세 깨달았다. 그가 끌러둔 소지품을 보면 부는 오히려 넘쳐 흐른다 싶을 정도가 아니던가. 릭은 벨져의 크지 않은 가방에서 이따금 새어나오는 물품이 아주 값어치있는 물건들이라는 것을 안다. 현금도 적잖게 있을 것이 분명했다. 허나 벨져는 어째서인지 그 돈을 쓰려하지 않는다. 수전노마냥 쥐고 놓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서도. 하여튼 중요한 점은 벨져 홀든은 비싼 값에 제 몸을 팔면서도 그다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5.10.02
글에 커플링 태그를 붙여놓았습니다
하도 좀 미묘한게 많아서 태그는 글케 믿지않으시는...게좋고(왜붙엿는지
머 그래두 일단...같은
아직 정체성이 모호한 연재물(...)은 태그를 달지 않았습니다
컴션문의들어올때마다 받는다그래놓고 영 받을짬이안난지 벌써 두달인가(.....)
이대로가다간 12월끝나고 받을것같아서 길지 않게 커미션받습니다 한분만...
일단 이거 올려두고 나중에 트위터에서 받을때 말할게여 멘션이나 디엠으로 주세여 받을때...받을때...
아마 주말중에...아마도...
*4천~1만자내외
*성인한정. 당연하지만 결과물은 19금이에여
*주제나 보고싶은걸 말씀주시면 제가 플롯을 짜옵니다. (글자수도 정해주실수있습니다 정해주신 분량을 넘길 경우에도 추가금은 없습니다)
글쓰는방식때문에 중간컨펌이 힘든관계로 가능한한 세세하게 말씀드려요 중심축 벗어나게하지않으려 애씁니다(...) 보고싶으신거/변경원하시는거 확실하게 말씀주세요.
*플롯제시:5일전후 필요함
*완성일 예상:일단 9월말...인데 당연하지만 길이에따라 다릅니다 플롯나오는거 보고...
*1천자당 4천원
*공개제한:한정공개/전체공개 선택 가능합니다. 티토+pdf 둘다 드려여
*차후 커미션들을 묶어서 책을 낼수도 있는데 동의하시는지(내게될경우 책과 소정의 선물을 같이 드립니다)
*신청가능한거: 제가 써봤던 커플로만 부탁드릴게여...........
장기자랑은 자신이없고/슥핫톨로지 불가능합니다.
보고싶은 ㅊㅔ우1있으시면 말씀주시면 한번 애써봅니다(쓰는상황따라 안될수있음)
입금은 시작할때 반만 주고 나중에 다주셔도되고 시작할때 다주셔도 됩니다 편하신대로
감마님/츠시님의 티마트윈지에 드린 축전이에여~.~
통판까지 끝났다구하시길래 허락받구 올려여
드라마시디(아님) 나온 지금은 아마 쪼꼼 해석이 다를것같기두한ㅋㅋㅋ
흐흐 좋은기회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용한 거리
수군거리는 소리. 설마 이렇게 가버릴 줄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그 남자가. 믿기지 않는걸.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어. 사람 앞일은 모르는 법이야…. 흘러들어오는 말은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아니다. 고삐를 잡지 못한 능력은 마음을 긁어모은다. 전신으로 소리가 닿았다. 마틴 챌피는 검은 옷을 입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믿기지 않는 일을 받아들여야 할 때 사고는 정지한다. 마틴 챌피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정작 지금 본인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마틴이 평생에 마음을 읽을 수 없던 타인은 단 한 명 이었다. 지금 저 상자 안에 누워있는 동양인. 티엔 정이 그러했다. 저자가 더이상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 마틴이 생각을 읽지 못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몇백 몇천 아니 몇만 번을 생각했던가. 횟수를 세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마틴은 자주, 곧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저 남자가 내 주변에서 사라진다면! 그리되기를 상상했고 그리되기를 바라왔다. 티엔 정이 사라진 세상에서 후련해진 자신을 떠올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조금 더 개운할 거라 생각했는데.
마틴은 어딘가 먹먹한 제 가슴을 부여잡으며 생각한다. 슬픈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래, 그게 아니라 그냥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랐을 뿐 죽기까지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단 한 번도 죽으라는 생각을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재단에 뜬금없는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메워야한다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리라. 마틴은 그리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인정해야 한다. 티엔 정이 죽었다.
――라는 꿈을 꾸었다.
무슨 연유로 그리되었더라. 눈을 뜬 마틴은 천장을 바라보며 벌써부터 어렴풋해지는 기억을 애써 부여잡아본다. 차에 치였던가? 아니지, 그 남자는 차에 치였다고 죽을 남자가 아니다. 아무리 꿈속에서라도. 그러면 칼에 찔려서――도 죽을 것 같지 않다. 칼이 부러지겠지. 아니면 총에 맞아서…총알이 들어가긴 하나? 튕겨 나갈 것 같은데.
티엔 정이 죽는다는 심상은 생각보다 현실성이 없다. 꿈에서 저 동양인은 분명 죽었는데도 어째서인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해내 마틴 챌피. 벌써 부옇게 흐려지는 이미지를 억지로 끌어낸다.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떠올려보려고도 했다. 허나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항상 저 거슬리는 동양인이 제 눈앞에서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으나 막상 그 상상을 구체화하기에는 납득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마틴은 제 턱을 손끝으로 탁탁 치며 고뇌했다.
쓸모없는 남자라고 마틴은 생각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융통성은 제로, 그러다 보니 인격적으로도 어딘가 이상하다. 침대에서도 영 재미가 없다. 굳이 그런 남자가 아니어도 아시아 스카우터로 쓸만한 사람은 줄을 섰을 텐데. 그런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에게 브루스 보이틀러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브루스가. 마틴을 이젠 없는 사람 취급하다시피 하는 그 브루스가! 거기에 마인드 리딩을 시도했을 때의 그 재수 없기 짝이 없는 반응까지! 마틴은 티엔 정의 표정을 떠올리기만 해도 미간이 구겨지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이런 재수 없는 꿈이라니.
어떤 점이 그리 기분이 나쁜지는 불확실하다. 티엔 정이 죽었다는 점? 그 이유를 떠올리지 못하는 점? 아니,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게 어째서 찝찝해야 하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로 불쾌한 아침이 흘러간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도 불쾌한 기분이 영 사라지지를 않는 마틴에게 놀라운 말이 들려왔다. 동쪽에 다녀온 티엔 정이 요상한 풍토병에 걸려왔다는 소식.
풍토병이라는 말은 마틴에게는 죽을병이라는 의미로 닿았다. 서두르지 않는 척 자꾸만 빨라지려는 다리를 붙들어매며 복도를 걷는다. 몇 번이나 어깨가 부딪혔다. 마음이 흐트러지니 능력이 자꾸만 새었다. 설마 그 티엔 정이. 그 동양인도 병에는 별수 없는 모양이군…. 갖은 생각이 들린다.
티엔은 제 방에 있다고 했다. 마틴은 문앞에서 그 제자와 마주쳤다. 하랑이 씨익 웃었다. 어, 마틴 형, 병문안 온 거야? 이 기회에 잘 봐두라구 싸부가 언제 이러겠어? 히히덕거린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병인가? 정신없이 뛰던 심장이 약간 느릿해졌다. 하랑이 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열린다. 들어가 보셔. 비켜서는 하랑 옆으로 방에 발을 들였다. 저편으로 침대에 누운 사람이 보인다.
티엔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 철통 같은 표정으로 침대 위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다. 마틴은 문가에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가만 보았다. 허리 아래가 잘 안 움직인다더라구. 하랑이 귀띔했다.
아 그렇군요. 걱정할 건 없고 며칠 지나면 낫는대, 난 그동안 좀 놀아야지 그럼 싸부 말상대 좀 해줘~.
티엔의 어린 제자는 손을 팔락이며 저 멀리로 사라졌다. 흥얼거리던 콧노래만이 귓가에 남는다.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마틴은 문 앞에 서서 눈을 찌푸렸다. 걱정? 걱정을 했나. 아니 아니다. 그저 생각보다 너무 멀쩡해 보이기에 놀랐을 뿐이다.
티엔의 방은 그 성격답게 쓸모없는 물건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생활감이 희박한 방을 가로질러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 마틴이 근처로 다가가서야 티엔은 눈을 움직여 그 얼굴을 올려다본다. 숨을 들이쉬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꼴 좋네요.”
흔들리려는 목소리를 애써 유지한다. 고개를 좌우로 크게 저어 보인다. 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기’라는 거, 병에는 쓸모 없나 봐요?”
약해진 지금은 가능할까 싶어 조심스레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마음은 읽히지 않는다. 새카만 두 눈이 깜빡깜빡 마틴을 비춘다. 병에 걸리고서도 여기까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니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고 마틴은 비꼼 섞은 감탄을 흘린다.
신체의 윤곽을 따라 툭 튀어나온 이불 옆으로 몸을 내렸다. 얇은 이불 위로 다리를 건들어보아도 반응은 없다. 티엔은 그저 제 몸을 건드는 마틴을 약간의 움직임과 시선만으로 좇을 뿐이었다. 그 시선에 개의치 않고 단단한 복부를 툭툭 쳐본다. 정말 안 움직이나 봐요? 그런 모양이군. 짧은 답변.
“이래서야 업무는커녕 밤일도 글렀네요.”
마틴이 코웃음 쳤다. 명백하게 자신을 향한 조소임에도 티엔은 입꼬리를 올린다. 훗. 작게 흘리는 웃음이 마틴의 신경을 긁었다. 항상 부드럽게만 보이던 표정이 비뚤어진다.
“걱정해 주는 건가?”
“왜 그렇게 생각하죠?”
저도 모르게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상대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티엔의 말을 자르기라도 하듯 공격적으로 나간 반문에 덧붙여 마틴이 말을 잇는다. 이렇게 말을 해봤자 꿈틀도 하지 않을 티엔 정이라고 이미 잘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말을 않을 수는 없었다.
“당신은 마음을 읽을 수 없잖아요. 어떻게 장담하나요? 자신감이 아주 넘치는군요.”
“난 장담한 적이 없다.”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오고 마틴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답답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속을 읽고 그에 맞는 답으로 되받아치면 되는데, 티엔 정의 속만큼은 읽을 수가 없었다. 병에 걸린 지금도. 재차 그 속을 읽으려 해보았으나 돌아오는 건 정적과 티엔 정의 기분 나쁜 웃음뿐이다.
마틴은 눈을 찌푸린다. 깜빡깜빡 감겼다 뜨였다 하는 검은 눈에 잔뜩 심통이 난 제 모습이 비추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저 새카만 눈동자가 의외로 만물을 선명하게 비춘다는 사실을 마틴은 잘 알고 있다.
“혼자 웃고 화내고. 바빠 보이는군.”
귀에 닿는 평탄한 목소리와 변화 하나 없는 표정에 마틴은 고개를 돌린다. 다리를 흔들어 바닥을 두 번 찼다. 그리고 다시 눈을 흘긋 돌려 티엔의 표정을 살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눈을 돌려도 그 행동을 알 수 있었을 것을.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눈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할까 말까. 이런 말을 꺼내는 의미가 있나. 자문을 반복했다.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입을 연다.
“오늘 당신이 죽는 꿈을 꾸었어요.”
딱히 반응을 바란 건 아니다. 그래도 나름 반응이 있겠거니. 그리 생각하고 한 말인데도 티엔은 미동도 없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마틴은 생각한다. 시선을 돌렸다.
마틴은 말을 꺼낸 것을 약간 후회했다.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응을 하지 않을까 하긴 했으나 굳이 이런 말을 한다고 크게 놀랄 인물도 아니고. 불쾌히 여길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말을 하고 싶었는지 저 자신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쓸데없이 가슴이 뛰었다.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어. 앞일은 모르는 법이야…꿈에서 들은 목소리가 끈질기게 마틴의 뒤를 따라온다. 고개를 내저었다.
마틴도 딱히 말을 더 잇지 않고 가만있으니, 그제야 티엔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꿈은 현실의 반대라고들 하지.”
순간 덜컥 생각이 멎었다. 앞으로 모은 제 손가락을 잠시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퉁명스레 말을 내뱉었다.
“그렇죠.”
고개를 돌려 다시 티엔과 시선을 마주한다. 소리는 더이상 마틴에게 따라붙지 않는다.
“꿈에서 죽었으니, 살겠네요.”
“내가 죽기를 바라나? 마틴 챌피.”
“그렇게 보이나요?”
도무지 생각을 알 수가 없다. 모든 답안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틴의 눈에 답이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생각은 마틴의 영역이었는데. 병이 든 지금조차 마틴 챌피는 티엔 정의 생각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저 눈빛이 싫었다. 속을 뻔히 들여다보는 저 눈이. 대체 뭐가 보이기는 한 건지 싶은 새카만 눈. 저를 거울처럼 비추는. 모든 이의 속을 읽어내는 마틴이 유일하게 마음을 알 수 없는 자, 그자가 마틴 챌피의 속을 꿰뚫어보다니.
하지만 이번엔 티엔이 틀렸다. 반쯤은 억지로 생긋 웃어보인다. 새카만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고 마틴은 자신의 마음을 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을 인정한다. 그래야만 티엔에게 이길 수 있으므로.
한쪽 무릎을 침대 위로 올려 얼굴을 티엔에게 가까이 가져간다. 검은 눈동자를 직시했다.
“이번엔 당신이 틀렸어요. 티엔 정. 난 당신이 살기를 바라요.”
사람 얼굴을 이렇게 빤히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얼굴을 굳이 보지 않아도 생각은 자연스레 알 수 있었으니까. 마틴 챌피에게 의사소통이란 타인의 생각을 읽고 그에 맞는 대답을 적당히 내보내는 것. 그게 전부였다. 다만 티엔 정에게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마틴은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티엔의 눈을 보고, 얼굴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 생각을 파악하고자 애를 쓴다. 그 상대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마른 목으로 타액을 삼켰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을 내뱉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검은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이 흔들렸다. 이 남자의 말대로 혼자 웃고 울고 화내고, 광대마냥 일인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티엔이 볼 제 모습이 제법 궁금했다. 마틴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적당히 둘러대기로 한다.
“당신은 아시아 지역 스카우터니까요. 아직 정해진 후임도 없는데 죽어버리면 재단에 있어서는 큰 손해라구요? 난 당신이 그렇게 쓸모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말이죠.”
“그렇군.”
가까운 거리다. 숨결만이 닿는 거리에서 마틴은 눈을 깜빡이며 티엔을 바라보았다. 티엔도 마틴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쳤다. 갈색 눈동자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티엔이 알고 있는지 아닌지, 마틴은 답안지를 적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다. 내뱉지 못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말하면 더이상 마틴 챌피일 수 없을 것 같아 말하지 못한다.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내뱉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하필 이럴 때 허리를 못 쓰나요, 정말 쓸모가 없네요.
소리도 육체도 금한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까. 해답을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채로 충동에 따라 입술을 대었다. 눈을 언제부터 감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입술을 마주 대고 있었다. 그리고 속삭인다.
“인정할게요.”
무엇을, 이라고 티엔은 묻지 않는다. 티엔은 제 속을 마틴에게 보이지 않는다. 해답지는 자신이 꼭꼭 숨긴 채 마틴을 대한다. 마틴은 티엔을 보며 매 순간 저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티엔을 생각하는 저 자신을. 새카만 눈에 비치는 제가 어떤 모습인지를. 하지만 그 모습을 알고 인정하는 것과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마틴은 마틴 챌피로서 티엔 정에게 이기고 싶었으므로.
놀랍도록 조용한 공간. 아무런 생각도 들리지 않는다. 차오르는 소리를 입술을 더욱 눌러 담는다.
당신을 잃을까 봐 걱정했어요.
마틴은 말하지 않는다.
15.08.06
여름이 이제 끝나ㅜㅜㅆ으니 걍 주절주절 적는 책관련 잡담.
머...내용관련으루 적는건 없고 원고할때 있던일같은거 기억나는거 쫌 적어봅니다.
유년기의 겨울 (다무벨져/24P/15.03.28/3서코)
정말 좀 무리...를 해서 냈던 책ㅎ...(돌발본) 무리를해서라도 내려고 했던건 사실 그거였는데 그... 첫 스타트가 항상 힘들어서...
처음만 어떻게든 해두면 그 다음부터는 어케든 할수있을것이다라는 근자감을 가지고 흑흑 갑자기 표지그려주느라 페오님이 고생했던 책ㅜㅜ
페오 아리가떠 사랑해!!!
겨울숲의 종언 (다무벨져/88P/15.04.19/4홀든)
원래 홀온 부스가 없었는데(벨져파기 시작한게 2월이라 있을수가없었다) 겸님의 은총을 받아 어케 한구석에 자리를 마련해서 열심히 준비를했던 기억이...
이거 다시보니까 글씨를 완전 구겨넣었더라구여
다시 낼 일이 있으면 자간장평줄간격 다 손봐야할것같은 하하하 하...
마감이 빨라서 3월책때 안쓴부분이나 그런걸 좀 써보자하구 썼던 기억이 있슴다 보고싶은게 아주 확실하게 보였던것같음 허허허
페오랑 베루쟈 목도리색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만찬의 순서 (다무벨져/32P/15.05.10/5케스)
밥먹는책. 이거 파일보니까 쓰기시작한게 2월9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니 거진 비밀유지랑 동급으로 빠르게 시작했을텐데 완성이 안되길래 아 이거 평생 완성못하나하고 냅뒀던걸 원고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꺼내들고 마저쓰고 추가분량썼습니다 이건 책으로 낼게 아니었는데 허헛 ㅎㅏ하 카..ㄴ..ㅣ.ㅂ...ㅏㄹ리즘...허헛
이런 먼가 머가먼지 오락가락하는?거 생각하는걸 참 좋아하는데 그걸 잘 쓰냐와는 또 별개인것같은(....)
이거할때 참 이런저런 외부의 역경이 많았는데 어케 그래두 책이 나와서 다행인것같기도하고
릭벨이나 글벨로도 한번쯤 비슷한 네타를 써보고싶다는 생각이 쫌 듭니다.
페오가 내용이랑 넘 잘어울리게 그려줘서ㅜㅜㅜㅜ으흑 언제나아리가떠.....
물이 없는 일주일 (릭벨/140P/15.07.25/7서코)
막연하게 아 페도…하고 시작을 했던…것같은…100-110정도를 생각하고 시작해서 140에서 끝이났다...원래 7코때 두권내려고했는데 결국이것만ㅋㅋㅋㅋㅋ큐ㅠㅠ
릭>>>벨같지만 릭<<<벨인...결국에는 릭>><<벨인걸 하고싶었습니다.... 7코가 메루수때문에 1주 뒤로 밀렸는데 그덕에 무사히(...)나온 책.
쓸까하다가 영 의미가 없어서 뺀부분도 좀 있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것두. 반대로 이거보고싶어!!하고 쓴 부분이 몇군데있는데 티 다나겠져 허어
예특에 추가분량넣는건 좀 피하는편이라 정말 잡담만 적으려고했는데 예정이 바뀌어서 별개엔딩을 (...) 그건 그래서 티토에 공개해놓았으니 못받으신분은 거기서 보시면 될것같습니다.
표지에 금박은 정해놨었고 금박이요~했는데 나중에 전화로 맘보씨 무광 유광?하시길래 무광도있어요?했던 아련한 기억(...........) 무광하길 잘했다구 생각합니다! 아 마부님 릭벨 핥핥ㅜㅡ진짜 표지시안받았을때 와 이렇게...다정한 릭이...면정말....최고다라고...생각을...헉잘생겼어
Blue Sequence/블루 시퀀스 (담벨글/134P/15.08.29/8벨른)
5월쯤엔 이미 이거 쓰고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거였어여 강제근친교미...ㄱㅏ 보고싶다
처음엔 8코에...ㄴㅐ려고했는데ㅎ아니 그 예전일정은 7월이었는데 역시 그...제힘으로는 100넘어가는걸 두개 한번에는 무리가 있겠다 싶어서 이걸 8월로 빼고...나는 잊고있던것이다 8코가 7코에서 3주정도밖에 텀이 없다는사실을...............그래서 벨른에 냈는데 이것도 100-110일까했는데 134였네여 사실 글자수는 비슷합니다. 원고하는내내 이건 담벨이냐 글벨이냐로 머리가 아팠는데 쓰다보니 먼가 릭벨같기도하고...읽으시는분 편한대로 보시면 될것같습니다. 쓰면서 이게 굳이 오메가버스여야하는 이유가 있나 싶을 정도로 오메가버스세계관을 맘대로 쌈싸먹었는데 그래도 핵심부분?을 생각하면 오메가버스여야할것같아서 그대로 진행했던... 이거 중간에 좀 안좋은쪽으로 내용이 흘러서 다르게되면+더 구르면 어케될까도 많이 생각했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번 더 하구싶네여. 타삐님께 커미션으로 부탁드렸던 표지라 좀 일찍받았는데 받고 정말 와 이건...하...ㅜㅜ감사드려여 정말 예쁜표지 흑흑...ㅜㅜㅜㅜ
사실은 어떻게 생각해? (릭벨/20P/15.08.29/8벨른)
기왕 벨른이니 꼭 한권 더내고싶어서(존나) 신간이 근친이라 돌발로 릭벨을...하고 그 머냐 이거 네타는요 혼자서 막 ***!하고 불탄게 아니라 마감하느라 행아웃할때 마ㅂ님이 같이 불탄거라는 사실을 후기에 꼭 적었어야했는데 깜빡했다. 후후 앙님의 베루쟈 넘...청초하고 미망인같고 유부녀같고 귀엽고 너무..진짜 릭두 멋있구...갑작스레 내는데 정말 감사드려여 이자리를 빌어 다시 말씀드린다 이거마감할때도 머가 많았는데(기간은 짧지만) 마지막까지 이거 정말 낼수있을까하면서도 시간재면서 열심히 해서 결국 마감은 행사당일오전 8시반에 끝냈습니다. 축전주신 용사님 레토찡 칵뉨 지지사마 아리가떠어어어어어어어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하반기 일정은 10코/담벨갠지 11리백/릭벨갠지?하고 혼자는 아니구 다른분들이랑 하는게 좀 있습니다 이건 나중에 자세한게 나오면 인포를...
12코도 가능하면 먼가 내고싶고 1월 로망스도 일단 카탈로그신청서까지는 넣어두었습니다 최대부스라길래 간만에 나가볼까하구ㅎㅎ기대되네여 흐으
남은 15년두 잘부탁드림다~.~)ノ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