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누 맘보
제책은 아니구요 옹보님과 맘누님의 트윈지를 위탁합니다.
표지는 제유님( @jjuholden )이라고 합니다.
http://manbounikki.tistory.com/114 R19부분 샘플은 이쪽
R19/문고판(13*19)/72P/소설
서로 이어집니다. 벨져가 안타리우스의 시설로 추정되는 곳에 들어갔다가 잡혀서 고생하는 이야기.
그냥 Yㅑ설...입니다 샘플 옆에 적어둔거 대강 봐주시고 안맞는게 있다 싶으시면 패스를.....
전프레루 엽서를 드립니다...
샘플은 편집/교정 안되어있습니다.
옹보님 파트 샘플 촉ㅅ...비인간...山란...윤ㄱ...
벨져는 외벽에 등을 바짝 붙이고 섰다. 조용한 내부 안에서 이따금씩 사람 말소리나 발소리 따위가 들려왔기 때문에, 풀잎이 바람에 바스락대는 소리조차 그의 곤두선 신경을 긁어댔다.
인적이 드물다 못해 오지나 다름없는 깊은 숲 속 한가운데 커다란 폐공장이라니, 보기 드문 화려한 무대였다. 곧 안타리우스의 꼬리가 밟힐 중요한 순간인 만큼 숨소리조차 낮게 죽인 벨져의 눈빛이 사냥을 시작하는 짐승처럼 고요하게 요동쳤다.
벨져는 외벽에 등을 붙이고 천천히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숨어들었다. 이곳이 그들의 본거지인 만큼 홀로 움직이는 것은 용이한 한편 위험부담도 컸다. 그는 내부에 숨어들어 연락을 취한 뒤 급습하는 동료들과 합류하는 편이 좋을지 고민하면서 지하로 통하는 것 같은 수로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수로 안으로 미세하게 바람이 통하고 있는 모양인지 웅웅, 공기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벨져는 주저 없이 그 안으로 어깨를 들이밀었다.
발밑에 찰박찰박 밟히는 물웅덩이 위를 한참이나 걸었을까, 구부정하게 수그린 목이 당길 즈음해서 더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좁은 철 계단이 나타났다. 그 끝에 있는 작은 문은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듯 보였다. 이런 곳에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보니 비상시에만 이용하는 통로인 듯 했다. 아무튼 이 곳을 알아냈으니 꽤 괜찮은 수확이었다.
여기저기 녹이 슨 계단은 발을 디딜 때마다 이끼가 밟혀서 미끄러웠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도 한참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벨져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코를 찌르기 시작하는 악취 때문에 미간을 찌푸렸다. 사체가 썩는 냄새라기 보단 썩은 풀 더미에서 올라오는 악취가 짙게 배어있다. 생소한 냄새는 낯설기까지 해서 이상한 불안감을 조성했다.
벨져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서자 조그만 철문이 아주 오랫동안 그를 기다렸다는 듯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벨져는 그 문 앞에 서서 정말 훌륭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인적이 드문 깊은 숲, 폐 공장에, 그 아래에 나있는 수로, 그 끝에 건물과 통하는 허술해 보이는 작은 문. 그야말로 차려진 밥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덫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이제 와서 일을 그르칠 수도 없는 노릇인데다가 덫이라는 걸 알고 들어가는 건 오히려 상황을 역전시킬만한 키워드였으므로 걸어볼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벨져는 녹슨 철문을 어깨로 밀었다. 쇠문이 바닥에 끌리며 끔찍한 소리를 내서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몸을 안으로 들이밀자 원래 그런 구조인건지 문이 천천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벨져는 잠시 멈춰 서서 닫히는 문을 힐끔 돌아보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의 앞에는 새까만 어둠만이 몸을 웅크린 채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제 발로 들어가기엔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었다. 불을 켜는 것은 눈에 띌 수도 있으니 이대로 천천히 진입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을 마친 뒤 그가 천천히 걸음을 뗐다. 벨져의 발밑으로 잠시 끊겨 있던 기분 나쁜 물웅덩이가 다시 밟히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벨져는 천천히 자세를 숙이고 검의 손잡이를 쥐었다. 가까이에서 기척이 느껴졌던 탓이다. 그러나 사람의 기척이라기엔 미묘한 기척이었기 때문에 그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던 묘한 기척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벨져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그와 동시에 공중을 휘젓던 것 같은 움직임도 사라졌기 때문에 공기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겨졌다.
―쌔액!
공기를 빠르게 가르고 벨져를 향해 날아드는 것을 가까스로 피해내며 벨져가 위를 쳐다보자 곧바로 무언가가 위로 내리쳐졌다. 그는 바닥에 몸을 굴려 자리를 피해낸 뒤 두 검으로 날아온 물체를 베어냈다. 쉽게 베어진 그것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벨져의 시선이 자연스레 그를 향해 움직였다.
‘다리……?’
내부는 무척 깜깜했기 때문에 형체를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길쭉하면서도 뭔가 점성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칼끝에서부터 전해졌다. 일순간 짐승의 다리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육지대의 동물이 가질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벨져가 생각을 추스를 새도 없이 공격이 빠르게 이어졌다. 자신의 영역으로 침범하다 못해 제 몸에 상해를 입힌 것이 자극적이었던 모양이었다. 전보다 흥분한 것 같은 움직임이 거세게 허공을 휘저어댔다. 그 흥분한 몸짓을 가만히 바라보며 벨져가 제 위로 휘둘러지는 물체를 다시 잘라내기 위해 검을 고쳐 쥔 순간이었다.
“큭……!!!”
그는 등 위에 내려쳐 친 충격으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반동 때문에 손아귀에서 떨어진 검이 저 구석에 날아가는 동안 벨져는 제 위를 짓누르는 압박 때문에 헛구역질을 했다. 흉부를 압박하는 것은 몸을 부수기라도 할 작정으로 세게 무게를 가하고 있었다. 정황을 파악하는 동안 아까 베어낸 것의 다른 다리일 것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짐승이라고만 생각해서 방심했던 걸까?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이 아래에서 빠져나가는 것만이 그가 강구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었다.
그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자 짓눌렀던 다리가 천천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벨져의 몸을 끈으로 묶듯이 그러쥐었다. 그 움직임에 따라 벨져의 몸도 긴장으로 바짝 굳어졌다. 끈적하게 들러붙는 그것이 흡사 몸을 더듬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몸에 닿고 있는 것은 하나가 아닌 것 같았다. 검을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았다면 이런 것쯤은 이미 갈가리 찢어놓았을 것이었지만 그를 빛내는 두 검은 어느 구석으론가 처박혀 보이지 않았다. 벨져는 이빨로 아랫입술을 짓씹으며 바닥에 발을 굴렀다.
하지만 그런 저항쯤은 상관도 않는 모양인지, 그것은 벨져의 몸 위를 마음대로 만지며 돌아다녔다. 이게 사람의 손이었다면 다분히 성적 의미를 내포했을 만한 움직임이라 시간이 흐를수록 불쾌를 더해갔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만한 것은 입고 있는 옷이 멀쩡하게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제길…….’
행동이라도 자유로우면 다른 저항이라도 해 볼 텐데, 두 팔과 몸을 묶고 있는 것은 놓아 둘 생각도 하지 않는 듯싶었다. 지능이 뛰어난 것보다는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얽어맨 뒤 살펴보는 것 같았다. 생물인지 뭔지도 알 수 없긴 했지만, 아무튼 이대로 가다가는 이것의 먹이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그야말로 꼴사납기 그지없는 최후일 것이라고 자조할 때였다.
“……!!!”
벨져의 허리춤으로 그것이 고개를 디밀었다. 어떻게 옷 안으로 들어올 구석을 찾았는지, 허리께로 느껴지는 질척한 느낌과 미지근한 온도가 그를 절로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짐승의 혓바닥 같기도 했고, 해산물의 축축한 표피 같기도 했다. 아무튼 썩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천천히 배 위를 더듬다가 그의 아랫배 밑으로 기어가기 시작해서, 벨져가 그 뿌리라 생각되는 쪽을 걷어찼다. 그 발길질을 제대로 맞았는지 기어들어가던 것이 재빨리 몸을 감추고 옷 아래를 뒤집던 다리를 내뺐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그는 사람에게도 이런 식의 희롱은 당해본 바가 없었기 때문에 수치스러움에 목을 매고 싶을 지경이었다.
더듬고만 있는 것은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재고 있는 걸까? 벨져는 그것이 저를 입안에 넣었을 때 가능한 한 통으로 삼켜주길 바라며 그 상황을 빠져나갈 대책을 세웠다. 어찌 되든 간에 이 상황은 벗어나고 싶었다. 짐승의 혀로 맨몸을 핥아지며 간보기 당하는 것보다 나쁜 것은 없을 것이었다.
아까의 타격으로 더 조심스러워 진 건지 벨져의 몸을 죄고 있는 다리는 미동이 없었지만 주변에 그것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벨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최 이것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읽을 수가 없으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렇게 시간을 써버려선 계획이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눈앞이 깜깜하니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감도 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꽤 오랜 시간을 대치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모 아니면 도였다. 자극을 강행하여 이것이 행동하게 하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벨져가 다시 한 번 발길질을 하기 위해 앞으로 다리를 뻗었을 때였다.
“윽…!”
그의 발목을 앞에서 기다리던 것이 낚아 채 붙들었다. 바닥을 간신히 짚고 있던 한쪽 다리 역시 곧 그것들 중 하나에게 붙들려 위로 끌어올려졌다. 허공에 뜬 것이나 다름없는 자세가 되어 벨져가 몸을 흔들었다. 그가 움직일수록 몸뚱이를 쥐고 있는 것이 움직임을 둔화시키려는 모양인지 더욱 옥죄어왔다. 그것들은 스멀스멀 저들끼리 가까이 모이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벨져의 몸도 오므라졌다. 허벅지와 종아리를 붙인 채 몸을 만 그의 허리께로 아까의 그것 같은 게 스멀스멀 기어들어왔다. 벨져가 이를 악물었다. 제 입에서 끔찍한 소리가 날 것 같았다.
맘누님 파트 샘플 페ㄷ...여ㅊ...임ㅅ...윤ㄱ...
미열이 가시지 않는다. 사방의 어느 방향도 알 수 없는 어둠. 비릿한 냄새가 코를 가득 메운다. 무언가 코를 틀어막았다. 입안으로 액체가 부어진다. 호흡이 무겁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흐릿하다. 시간 감각이 없는 만큼 며칠이나 흘렀는지는 알지 못하나 벌써 한참이나 끝을 모르는 미로에서 헤매는 느낌이 이어지고 있었다. 분명 걷고있는 것 같은데 팔다리는 무거운 추를 달아둔 마냥 아래로아래로 가라앉는다. 동시에 묘하게 들뜨는 듯 맴도는 부유감. 상반되는 두가지 느낌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그렇게 걷고있었다고 얼마나 착각을 했던가. 어느 순간. 정신이 퍼뜩드니 몸은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두 다리로 걸었던 감각 자체가 그저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시에 본격적으로 사지를 잡아당기는 고통에 숨이 턱 막혔다. 그 와중에도 열에 들뜬 머리를 때리는 두통이 여전하다.
전신을 분해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통증이다. 딱히 누군가 찢어발긴다거나 하는 외상적 아픔은 아닌듯 하였으나 내장을 쥐어뜯고 뼈를 잡아당기는 감각에 다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죽는건가? 이대로? 이런 곳에서?
문득 그런 예감이 뇌리를 엄습했지만 벨져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한다. 이런 곳에서 죽을 리는 없다. 죽을 수 없다. 아직 해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어깨에 실린 짐이 가득하다. 여기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릴 만큼 자신은 한심하지 않다. 검을 들고 적을 베어야 한다.
눈이 감기고 기억은 물을 타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루사노 수도원. 사명을 받던 순간. 탐색. 마지막으로 보았던 본가의 저택.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 조금 더 상류로 올라가서, 오래된 수도원. 힘을 얻었던. 그곳에서 돌아가는 문을 보았다.
아직 아이였던 벨져 홀든은 멀찌기서 문을 바라보다가 몇 발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안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그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었으나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인지범위를 뛰어넘은 무언가임을 알았다. 끼이익.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린다. 쇠가 긁히는 소리. 깜짝 놀라 문에서 손을 뗀다. 뒷걸음질 쳤다. 문에 비치는 모습은 아직 어렸던 날의 벨져 홀든이다. 지금 든 검과는 다른 검이 소리를 내어 지면에 떨어진다.
―…져.
누군가 뒤에서 손목을 잡아 끌어당긴다. 전력으로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다시 달린다. 짤막하게 들린 소리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벨져는 알고있다. 정확하게는 알고있는 사람임이 분명했다. 아는 사람인데 누구라 말할 수가 없다. 다시 뒤에서 팔을 잡아 당기는 손. 확 잡채는 힘에 다리가 멈추고 몸이 뒤를 향한다. 얼굴을 보았다.
벨져 홀든!
그 소리에 호흡이 목에서 걸렸다.
퍼뜩 눈이 뜨였다. 순간 선명했던 시야가 금세 안개라도 낀듯 희뿌연 무언가가 눈앞을 가렸다. 동시에 몽롱한 기운이 머릿속에 들어찬다. 몸을 밑으로 끌어내리는 손길에 저항하려 이를 악물었다.
억지로 다시 흐릿해지려는 기억을 부여잡는다. 다시 눈을 감아서는 안된다. 무슨 일이 있었지? 기억의 파편을 전부 끌어모아 퍼즐을 맞춰나간다. 그곳에서. 이상한 방. 처음 보는 생물. 평생 알지 못하는게 옳았을 수치와 굴욕을 전부 맛보았다. 차라리 악몽이라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래. 누군가 자신을 주워 어딘가로 데려갔다. 데려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보였던 알지 못하는 공간. 흐릿한 시야로나마 새하얀 색채를 보았다. 큰 손이 팔목을 잡아 올렸다.
기억하는 한 그 순간부터 두 번을 더 정신을 놓았다가 다시 찾았다. 그랬던 것 같다. 아마도 이번이 벨져가 기억하는 세번째 각성이다. 계속 눈을 감고있던 건 아니다. 분명 멀쩡하게 뜨고있던 기간도 제법 길었고, 뜨고있었다는 인식도 있었으나 무엇을 보았는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확실치않다.
비교적 몸이 가벼워졌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숨을 내뱉는다. 눈을 열댓번 깜빡거리고나서야 앞이 멀쩡하게 보였다. 공기가 축축하다.
환기구가 돌아가는 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군데군데 철골이 드러난 벽면은 아직 이 곳이 벨져가 들어왔던 폐건물임을 말한다.
무의식중에 복부에 올린 손으로 옷과는 다른 감촉이 걸렸다. 고개만을 살짝 들어 몸을 내려다본다. 얄팍한 이불이다. 병적일 정도로 새하얀 이불이 하반신부터 복부까지를 가리고있었다. 다 무너져가는 건물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천이 이질적이다.
좋지 못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다만 언제까지고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삐걱거리는 상체를 간신히 들어올린다. 팔꿈치로 바닥을 짚어 몸을 일으켰다. 힘이 풀린 목을 억지로 세워 고개를 든다. 나른한 손이 잘게 떨린다. 이불을 걷었다. 서늘한 냉기가 피부에 닿는다. 허나 어째서인지 그 감촉이 어딘가 둔탁했다.
식은땀에 젖어 몸에 붙은 하얀 옷감. 감촉이나 두께를 볼 때 면은 아니고 거즈가 확실하다. 어깨부터 무릎 위까지 길게 떨어지는 옷은 양 옆이 이어지지 않고 트여있었으나 군데군데 묶인 매듭이 그나마 틈을 덜 벌어지게 한다. 생활복이라기보다 연구실에서나 입을법하다. 젖은 거즈 아래로 창백한 피부가 살짝살짝 비쳐보인다. 그 밑으로 드러난 신체는 벨져의 기억과는 제법 많이 달라져있었다.
경악스럽기 그지없는 변화였으나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킬 체력조차 없었다.
팔다리는 기억보다 한참이나 얇아지고, 짧아졌다고 해야할까. 아마도 작아졌다거나 어려졌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벨져가 알고있는 벨져의 신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거울이 없으니 전신을 한번에 확인하기는 힘들었지만 지금당장 두 눈에 비치는 몸은 아무리봐도 성인 남성의 체격은 아니었다.
어깨가 무거워져 다시 얇은 매트위로 몸을 눕혔다. 절로 흘러나오는 한숨은 열에 들떠 축축하다. 이제 두통은 한결 가벼웠다. 몸은 여전히 무언가 추라도 달아놓은 듯 아래로 무겁게 가라앉는다.
설마 아직 꿈을 꾸고있나? 그런 생각마저 든다. 어느쪽이 꿈일까. 스물여섯의 벨져 홀든이 걸었던 여정이 사실은 신기루였나. 아니면 지금이? 상황파악조차 힘든 황당무개한 현실에 벨져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와 거진 맞물려 바닥을 긁는 소리. 싸늘한 시멘트 바닥위로 드르륵 바퀴가 구른다.
"정신이 들었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모르는 남자다. 허름한 회색 천장을 배경으로 남자는 벨져를 내려다본다. 하얀 가운에 두꺼운 안경. 의사나 과학자같은 인상이다.
"험한 꼴을 당했던 모양이야. 회수하라고했지 멋대로 써도 좋다는 허가는 내리지 않았었는데… 몸을 회복시키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역시 능력자는 일반인과 다른건가? 금세 몸은 좋아졌어. 흠, 그래. 어디보자… 겉모습은 합격이군. 아직 괴로워보이니 약을 한 대 더 놓아야하겠어."
혼자 주절주절 잘 떠들고는 남자가 옆에 둔 카트에 손을 놓는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야로는 그 위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확실치 않다. 남자가 허리를 굽혀 쪼그려앉아, 마르고 작아진 팔을 바닥에서 건져올린다. 다른 한 손으로 투명한 호박색 액체가 담긴 주사기. 뾰족한 바늘로 약물이 가늘게 솟았다.
남자의 움직임을 따라 반사적으로 시선을 둔 하얀 팔에는 이미 붉은 바늘자국이 가득하다. 어느새? 그런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한참이나 가늘어진 팔로 주사바늘이 파고든다.
약물이 혈관으로 들어온다. 얇은 통증이 손끝까지 저며든다. 주사는 생각보다 긴 시간동안 이어진 것 같다. 어느정도 감각에 익숙해진 상태에서 벨져는 신체의 변화에 대해 생각했다. 그저 마르기만 한 게 아니니 단순히 근육이 빠진 탓은 아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었나? 아니면 약물? 어찌되었든 저들이 자신의 몸에 무슨 짓을 했다는 것은 사실이리라. 그게 무엇인지 벨져는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눈을 분명 뜨고있었다. 계속 뜨고있던 인식은 있다. 갖은 약물에 절여진 머리는 그저 몽롱할 뿐 기억이 불분명했다. 흐리멍텅한 눈앞으로 무언가를 흔들었던 것 같은데. 무어라 말했던 기억도 있다. 귀로 그 말이 흘러들어왔다. 들었을 수도 있다. 듣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슨 말이 들어왔고 그것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아니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지.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기억이 없다.
주사기에 담겨있던 약물이 바닥나고, 거진 동시에 정신이 흐릿해졌다.
고개를 옆으로 도리질쳐보아도 눈앞이 자꾸만 아득해진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억지로 깜빡거려 정신을 유지하기위해 애를 쓴다. 종이 한겹 사이로 몸을 만져지는 감각이 이어졌다. 고무장갑의 뻑뻑한 촉감이 옷감 너머, 혹은 맨살 위로 맞닿는다. 좋아, 외견상으로는 완벽하고……. 남자의 혼잣말이 귀에 들어왔다.
"무슨 짓을 했지?"
젖어서 작아만지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 묻는다.
"네 육체를 가장 '싱싱했던' 시절로 회귀시켰어. 아, 아직 보지 못했겠네. 보겠어?"
벨져가 그에 대한 대답을 하기도 전에 남자의 뒤에 있던 다른 사람이 머리맡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는 커다란 손으로 어깨 바로 아래를 잡아 벨져를 들어올린다. 짐짝이라도 들어올리듯 몸이 위로 이끌리고 발끝이 바닥에서 약간 뜬다. 손은 어느새 겨드랑이 아래로 가슴팍을 세게 쥐고 있었다. 그 팔을 떼어내려 작아진 손으로 팔을 잡아도 보았지만 두꺼운 팔은 꿈쩍도 않는다. 고개를 가누기도 힘든 상황에서 억지로 목에 힘을 주어 멀쩡한 체를 했다. 약간 걸어 커다란 거울 앞에 다다른다.
잘 닦인 거울에 전신이 담긴다. 뒤에서 벨져를 붙든 남자와 옆에 선 안경을 쓴 남자도. 허나 그 두사람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을만큼, 벨져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다.
"역시 피험체의 질이 좋으니 결과도 양호해. 그렇지 않아?"
방금 전까지. 거울로는 보지 못했어도 몸을 내려다 보는 정도는 가능했다. 그랬기에 예상은 했던 광경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두 눈으로 직시하면서도 믿겨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본 벨져의 입가가 이윽고 헛웃음으로 작게 일그러진다. 작게 중얼거린다.
"악취미가 따로 없군."
실험동물의 혼잣말에 남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파란 눈을 찌푸린다.
"악취미라니. 시간을 자유로이 다루는 건 신의 권능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는 힘을 손에 넣었고 첫 제물로 너를 택했어. 영광스런 첫걸음이지. 영광에 동참하게 해줬으니 감사하라고."
호쾌한 웃음소리에 담긴 조소가 신경을 거슬리게한다. 벨져는 다시 한 번 거울속의 자신과 눈을 맞추었다. 순간 흔들리는 눈동자가 불쾌하다.
몇 살 즈음일까. 열넷? 열다섯? 10대중반이 아슬했던 시절의. 거울에 비치는건 벨져가 아는 벨져보다 한참 어린 시절의 벨져 홀든이다. 어깨폭도 신장도 팔다리도 얼굴도. 마지막으로 거울에 담겼던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작다. 거즈로 된 얇은 옷을 두른 어린시절의 자신은 마치 실험실의 하얀 생쥐와 다를바가 없어보인다.
뒤에서 벨져를 붙잡던 남자가 손을 놓았다. 서있을 수가 없었다. 휘청휘청하던 몸은 결국 다리에서 힘이 풀려 아래로 주저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