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홍색 결박
다무벨져/전력60분 발목
벨져→제레온묘사쫌있음
흐 완전 전파다
발목 좀 베자. 라는 건 분명 막내의 말버릇이었을텐데. 어연 일인지 둘째의 발목을 베어버린 건 첫째였다.
피가 튀었다. 확실하게 살점을 베는 감촉이 칼끝으로 전해왔다. 상처를 입히는 쪽이건 얻는 쪽이건, 각오했음이 분명했는데도 다이무스는 그만 흠칫 놀라고 말았다. 벨져가 몇번을 휘청이다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바닥에 몸이 부딪히는 소리. 벨져의 양 발목 뒷쪽에 상처가 선명하다.
"저런, 정말로 큰형이 작은형 발목을 베어버렸잖아?"
"수치스럽군."
"방심은 금물이지~ 작은형."
옆에서 지켜보던 막내가 낄낄 웃는다. 상당한 고통이 따를텐데도 내색하나 하지 않는 건 둘째의 버릇이었다. 벨져는 한숨을 내쉬며 완벽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한탄한다.
5년 전 치욕스런 패배를 겪고 모습을 감추었던 홀든의 둘째 아들이 얼마전 다시 전장에 나타났다. 가문은 그때 이래 그 존재를 감추고 싶어했던 모양이었으나 가만히 서있는것만으로도 시선을 집중시키는 둘째를 어찌 쉽사리 감출 수 있겠는가. 홀든의 둘째, 그러니까 벨져 홀든이 제 모습을 감추기를 그만 둔 순간 그 소식은 장남인 다이무스의 귀에도 들어왔다.
어디, 그동안 네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나 보자 벨져.
워낙 말재주가 없는 다이무스이기에 반쯤은 인사였고 반쯤은 그 실력이나 알아 볼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또 흘려넘길 말 몇조각 보다야 칼을 부딪히는 편이 의사소통으로서 훌륭하리라.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5년만에 검을 맞댄 동생은 생각보다 진지하게 승부에 임했고 그 결과 회사의 에이스는 아차하는 사이에 제 동생의 발목을 베기에 이르렀다.
"한동안 집에서 요양이나 하다 가야겠구나 벨져."
나름 위로 반 사죄 반으로 말을 전해보지만 그 말을 옆에서들은 막내가 피식피식 웃는다. 왜 웃나 이글. 아니, 그냥. 벨져는 딱히 반응이 없다.
베도 어떻게하면 이런 곳을 베나, 형 혹시 일부러 그런 거 아닌가?
그럴리 없잖나. 막내의 놀림을 부정하면서도 말은 하지못했다.
그래 이러다가 발목의 상처가 낫고 다시 걷게 될 즈음이면 또 훌쩍 집을 떠나겠지. 벨져는 아직 집에 몸을 둘 생각이 없는 듯 하니 그 수순은 분명하다. 다이무스는 첫째 동생이 곁에 있어주었으면 했으나 그를 강제할 마음은 없었다. 없다고 생각했다.
이틀 뒤, 문제가 생겼다.
전날, 유독 물을 많이 마시기에 의아하기는 했다. 하루에 얼마나 물을 마셨더라. 몇 병을 옆에 두고 마시면서도 갈증이 없어지지 않는다 하는 동생에게 다이무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네가 5년동안 이상한 버릇을 들여왔구나 벨져. 애석하게도 바로 어제까지는 안 그랬어 다이무스 경. 그 작은 의문은 다음날 믿을 수 없는 변화를 끌고온다.
도련님 이외의 그 누구도 들어오지 말라 하셨습니다.
벨져의 방 앞에 선 하녀가 다이무스에게 간단한 식사를 전하고 자리를 뜬다. 무슨 일이지? 의문을 품으며 노크를 한 번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침대에 앉아있다. 하얀 이불로 복부부터 하반신까지를 전부 가린 채로. 제 형의 방문에 벨져는 다이무스에게 시선을 주고, 눈을 찌푸렸다. 고통이나 혐오라기보다는 곤혹에 가까운 표정. 보기 힘든 그 얼굴에 다이무스는 살짝 긴장한다.
식사를 탁자에 올리고 다이무스는 침대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바로 옆에서 벨져의 녹색섞인 푸른 눈을 직시한다. 그리고 이불을 걷어올렸다.
새빨간 지느러미였다. 발목을 찢고 튀어나오던 따듯한 선혈마냥 변색되지 않고 깨끗한. 다이무스가 베어낸 그 자리부터 아래까지, 두 발은 서로 달라붙어 새빨간 피로 만든 지느러미가 되어있었다.
다이무스가 놀라 이불을 떨어트린다. 둘째는 말을 잃고 입을 굳게 다물 뿐이다.
어쨌거나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다이무스는 사용인을 모두 무르고 벨져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왔다. 조금씩 위로 퍼져나가는 새빨간 그것이 말라갈 수록 동생의 안색이 좋지 못해졌기에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았다. 벨져가 들어가고싶어할 리가 없었지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어찌하겠는가. 다이무스가 들고 넣으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오후가 될 즈음 그 지느러미는 더욱 위로 올라와 하얗던 무릎까지를 빨간 비늘로 뒤덮었다. 굳건하게 대지를 밟던 두 발은 온데간데 없고 벨져 홀든과는 어울리지 않는 빨갛고 하늘거리는 지느러미만이 그 아래에 붙어있을 뿐이다. 인어. 라고 하면 비슷하겠지만 이대로 가다가 동생이 물고기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머리에 스친 불안을 내뱉지는 않았다.
"짐작가는 건 없나?"
"내 발목을 벤 장본인에게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형."
"베인 네 잘못이다."
벨져는 다시 입을 다문다. 그 눈이 자신의 다리였던 부분을 내려다 본다. 비늘은 어느새 허벅지까지 올라와있다. 두 손이 그 위에서 주먹을 쥐었다. 빨리 그분 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작은 중얼거림이 다이무스의 심장을 조였다.
다음 날 아침, 이글이 집을 찾아왔다. 막내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전하는 말에 물에 반쯤 잠긴 벨져는 다이무스를 노려본다. 그래 이런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겠지. 다이무스는 홀로 방을 나서 이글을 맞이했다.
작은형은? 떠났다. 흠, 그래? 그렇구나.
막내에겐 통하지 않을 거짓말이었으나 속아주는 건지 이글은 그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이글의 방문에 벨져는 더욱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아직 일주일조차 지나지 않았는데, 할 일이 너무나 많은 둘째에게는 잠시라도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벨져는 하얀 손으로 새빨간 자신의 비늘을 뜯어본다. 그 사이로 더욱 투명하게 붉은 피가 흘렀으나 그뿐이었다. 그 모습이 보기에 괴로웠다. 눈을 돌렸다.
밤이 찾아오고 다이무스는 벨져와 눈을 마주했다. 참방거리는 지느러미는 분명 동생의 다리였다. 며칠전까지만해도.
벨져가 저멀리에 세워둔 다이무스의 칼을 가리킨다.
"형, 이걸 잘라."
내 발목을 베었을 때처럼, 그리고 다리를 꺼내. 잔인하게 웃으며 어울리지 않게 간청하는 둘째에게 첫째는 무덤덤하게 반문한다.
"그리고 돌아가나? 제레온 경의 곁으로?"
첫째의 말에 둘째가 웃는다. 여전히 웃는다. 다이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이에게 넘기기 위해 피붙이의 살점을 베라 하는 건가. 비록 이렇게 된 건 제 탓이었지만.
커다란 검을 들고 동생의 곁으로 다가간다. 형아. 달콤한 목소리가 다이무스를 부른다. 몸을 숙여 그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눈을 감은 채 칼을 꺼낸다.
새빨갛게 터지는 비늘. 달콤한 향이 코를 메우고 투명했던 물을 붉게 물들인다. 다이무스는 그 속에서 중앙을 갈라내고 다리를 끄집어냈다. 새빨간 그릇 속에서 베어냈던 발목을 찾는다. 상처하나 없어진 다리를 벌리고 그 몸에 저를 묻었다. 의외로 저항은 없다. 언젠가 돌아오도록. 그런 소원을 담아 이마에 입을 맞춘다.
15.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