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B의 결말 1
앙님(@rehab_train) 커미션 두번째.
홀든벨전제로 릭벨. 종전후 우울한내용.
총 4편? 하루에 하나씩 올라와여. 2부터는 다 빨간거.
이번엔 별로 없지만 전체적으로 근1111친주의.
어떤 A의 고백 (R19) 와 세트?같은느낌.
*0601 쪼꼼수정함
1.
릭 톰슨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믿지 못한다.
조용히 해라. 귓가로 작은 소리가 속삭인다. 입술을 막는 건 앙상한 손가락이다. 어렵게 죽인 발소리조차 크게 울리는 밤의 복도에서 누군가가 릭을 끌어당겼었다. 눈앞으로 육중한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려던 릭의 입을 이 손가락이 막았다.
네가 왜 여기 있지?
그리운 목소리가 묻는다. 믿을 수 없으리만치 말라버린 손가락이 입술에서 떨어졌다. 릭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린다. 옅은 빛이 가득 찬 방에서 릭의 두 눈이 목전의 하얀 사람을 붙잡는다. 기억 속의 그보다 훨씬 마르고 수척해졌지만 틀림없는 그 사람, 벨져 홀든 이다.
꿈에서마저 원하던 결과였음에도 동공이 수축하고 제 손이 입을 틀어막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설마 환각은 아니겠지.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인다. 하지만 벨져는 사라지지 않는다. 꿈이 아니란 말인가. 정말로? 너무 그리운 나머지 눈을 뜨고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살을 꼬집어도 본다. 피부를 아리는 통증. 그제야 릭은 자신이 현실에 있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두 번 다시 살아서는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야 했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말을 해버리면 사라질까 싶어 벨져의 두 어깨를 단단히 잡았다. 딱딱한 뼈의 감촉. 가늘게 떨리는 입술이 열린다. 무언가에 홀린 듯 흘러나오는 소리를 막을 수가 없다. 그대는 죽었다고 들었는데. 제 목소리가 멀다.
오늘. 이른 아침. 우편물이 도착했다. 작은 상자였다. 발신자 미상. 릭의 주소만이 적혀있다. 이리저리 꼼꼼하게 포장된 외투를 뜯고 그 속에 들은 검은 물체를 꺼내 들었다. 나무로 된 검은 상자다. 딱히 잠금장치가 되어있지는 않은 그 상자를 열었다. 딸깍이는 소리가 들리고, 내용물이 드러난다. 검고 푸른 장갑. 군데군데 짙은 핏자국이 남아있는.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는 물건이었다. 심장이 뛴다. 장갑 위로 작게 놓인 메모를 집어 들었다.
「B로부터. 친애하는 타키온, 릭 톰슨에게.」
마침표까지 눈이 이동하고, 시간이 멈췄다. 릭, 릭 톰슨. 벌써 들은 지 한참 지난 그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왱왱거리는 이명. 릭, 게이트를, 듣고 있나, 릭 톰슨, 릭 내 말을 들어. 몇 겹이나 겹쳐 들리는 목소리. 가슴팍을 잡는 검은 장갑. 숨이 막힌다.
어서 자신을 저 안으로 보내라던 벨져의 나즈막한 외침. 그 말에 응하지 않았더라면 무언가 바뀌었을까. 모든 것이 끝나고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릭에게는 벨져의 모든 것이 생생하다.
다 끝났다고만 생각했다. 문은 닫혔다. 안타리우스는 괴멸했고 전쟁은 끝났다. 그리 믿어 의심치 않던 순간이었다. 벨져의 두 형제가 아직까지 남은 마지막 적을 상대하기 위해 무너지는 건물 안에 남아있다는 전보를 들었던 건.
형제들이 아직 저 안에 있다는 말을 들은 벨져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눈을 크게 뜨고 그대로 얼어붙는다. 릭이 황급하게 몸을 잡아 흔들었다. 벨져, 벨져! 두세 번 몸을 흔들고야 벨져는 릭을 눈에 담는다.
숨이 탁 트인 듯 목에서 소리가 난다. 빛이 돌아온 눈동자가 릭을 쏘아보았다. 곧게 응시하는 두 눈이 가늘게 흔들린다. 아니, 흔들린 건 릭의 눈빛이었다. 눈읖 깜빡인다. 입술이 움직인다. 벨져의 목소리가 멀게 들린다. 지금 뭐라 했소. 묻고 싶어도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벨져가 아무리 말해도 말을 듣지 못하고 얼어붙은 릭의 가슴팍을 잡는다.
"릭, 다시 한 번 말하겠다. 게이트를 열어라."
선명한 목소리. 고개를 저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렷한 두 눈에 비치는 제 얼굴이 그저 한심하게만 보였다. 예감이 좋지 않아, 이미 늦었어, 포기하시오, 나는 아직 그대를 잃고 싶지 않단 말이오. 잔혹하면서도 상냥한 말은 끝끝내 전하지 못했다. 벨져의 요청을 거절할 수 있는 릭이 아니었기에.
새카만 어둠이 뭉친다. 그 속으로 몸을 던지는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으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게이트가 닫힌다. 어둠이 흐트러져 사라졌다. 릭 톰슨은 벨져의 부탁에 따라 제 손으로 그를 사지로 내몰았다.
돌아온 건 두 사람과 하나였다. 저 멀리 서 있던 다이무스 홀든의 뒷모습. 무언가를 품에 들고 있었다. 사람이다. 장갑이 벗겨진 하얀 손이 힘없이 아래로 늘어져 있다. 피로 범벅이 된 하얀 머리카락. 이마는 보이지 않는다. 피가 뚝뚝 흘러 손끝을 타고 땅으로 떨어진다. 변색되지 않은 선혈이 지면을 적셨다. 다이무스의 등에 가려져 그가 안고 있을 첫째 동생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가가려던 릭을 붙잡은 건 막내인 이글 홀든이었다. 이글 또한 상처투성이였다. 떨리는 시야로 고개를 젓는 이글의 모습. 주저앉은 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벨져는 죽었다. 나를 잊어라. 벨져의 유언이다. 그 뜻을 알고 있겠지 릭 톰슨.
한치의 떨림도 없이 담담하게 고하던 목소리는 벨져와 닮지 않았다. 그의 형은 그와 닮지 않았다고 릭은 항상 생각했다. 다만 그 순간만큼은. 힘없이 주저앉은 릭을 내려다보던 그 눈빛만큼은 그들이 형제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벨져. 벌써 지친 건가. 잠시 바위에라도 앉을 세면 혀를 차며 내려다보던 눈동자. 다이무스 홀든은 벨져와 같은 그 눈으로 벨져의 죽음을 전했다.
살아 돌아오라 말할 새도 없었다. 작별인사를 입에 담을 수 있었을 리가 없지만, 미처 붙잡아보지도 못했던 자신에게 아쉬움보다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기회가 분명 있지 않았던가. 아니 기회 정도가 아니었다. 칼을 제 목에 들이민다 하더라도 거기서 게이트를 열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설령 그로 인해 벨져가 소중한 혈육을 둘이나 잃게 된다 하더라도. 그 결과 그가 미쳐버린다 하더라도 상관없지 않았는가. 릭에게 이만한 지옥은 없을 터였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 대상이 원한 일이라 해도 벨져를 사지로 내몰았던 것은 틀림없는 릭 톰슨의 능력이었음을.
죽었다 했다. 마지막 인사조차 전할 기회도 없이 그게 마지막이었다. 장례도 가장 밀접한 그의 형제들만이 모여 속전속결로 빠르게 행해졌다고 풍문으로 들었다. 크리스티네 프리츠조차 몰랐다 하던가. 어째서 그리도 은밀하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른다. 늘어진 손끝으로 뚝뚝 떨어지던 붉은 피. 그 붉은 색만이 기억에 선명했다.
그 뒤로 내쫓기듯 일상으로 돌아왔다. 능력은 그대로 남아있었으나, 더이상 능력을 쓸 수가 없었다. 가만히 벽 앞에 서서 게이트를 열려 하면 귓가로 울리는 환청. 자신이 이은 공간으로 발을 들이던 뒷모습이 눈앞에서 몇 번이고 재생된다. 도망치듯 뛰어든 꿈에서조차 벨져의 뒷모습을 보았다.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몸은 충실하게 생활을 이행한다. 숨도 쉬고 음식도 섭취했다. 일을 하고 잠을 잤다. 기계처럼 정해진 일상을 소화해내면서도 흐름에 풍화되지 못한 감정이 릭을 붙들어 맸다. 모든 것은 아직 그곳에 있건만 릭에게는 돌아갈 방법이 없었다. 그런 때였다. 이른 아침, 새카만 장갑이 릭에게 전해진 것은.
시간이 움직인다. 어떤 이가 이런 장난을 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벨져 홀든의 장갑임이 분명한 그 오른손을 그의 방에 가져다 놓아야겠다고 릭은 마음먹었다. 미처 하지 못한 작별인사의 대신이기도 했으며 앞으로 전진하고자 하는 의사이기도 했다. 내가 언제까지고 꾸물거려봤자 그대가 나를 한심하게 볼 뿐이겠지 벨져. 한 짝뿐인 장갑을 두 손으로 감싸며 중얼거렸다.
밤을 틈타 언젠가 발을 들였던 홀든의 저택으로 누구도 모르게 잠입했다. 몇 달을 쓰지 않았던 능력은 어딘가 어색하기만 하다. 새카맣게 빨려드는 어둠으로 몸을 던지는 게 이리도 기묘한 감각이던가. 게이트를 열어라, 릭. 환청이 들렸다. 귀를 막고 몸을 던진다.
그리고 그저-- 발이 이끄는 대로 거닐다가. 어둠 속 다가오는 등불에 몸을 숨기기도 했다가. 그러던 도중에도 이제는 분명 남지 않았을 그의 잔재가 릭의 감각을 뒤흔들었다. 벨져가 유년시절을 보냈을 저택은 어디를 가도 보이지 않는 그의 흔적으로 가득했다. 귓가에 맴도는 부르는 소리. 서늘하던 피부의 감촉. 뒤돌아보던 날카로운 눈매. 진흙탕에 뒹굴어도 깨끗해야 했고 그 어디에 부딪혀도 가루조차 떨어지지 않던 사람. 그림자가 팔을 잡는다.
섬광은 이 세상에 없다고 그의 혈육이 전했다. 무엇을 원해 이곳에 발을 들였던가. 주머니에 구겨 넣은 장갑을 세게 쥐었다. 저 멀리서 등불이 다가온다. 숨으려 했으나 뒷편에서도 똑같이 다가오는 또 다른 불빛에 등이 벽으로 붙었다. 큰일났군. 그러던 찰나 등 뒤에서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하얀 손이 릭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지금으로 이어진다.
눈앞에 나타난 모습이 신기루가 아닐까 싶어 눈을 부빈다. 티 없이 하얀 머리카락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약간 짧다. 몸도 잔뜩 말라 두 개의 무거운 검을 휘두르던 모습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두 눈만큼은 여전히 강한 빛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그가 벨져 홀든이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이리라.
벨져는 죽었다.
기억 속 다이무스의 목소리가 울린다. 몇 달이 지난 지금 그 말을 부정하려 고개를 저었다.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앙상한 몸을 품에 안았다. 말랐으면서도 단단하던 예전과는 달리 그저 잔혹하게 말랐을 뿐임에도 어찌 되었건 심장은 뛰고 있다. 여전히 서늘하나 틀림없는 벨져 홀든 본인의 감촉에 안도한다.
"블레이드가 나에게 거짓말을 했군."
소리가 떨린다.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기억에 남은 감촉보다 약간 푸석한 그 자락이 손에 감긴다.
"무슨 말이냐."
"그대는 지금… 살아있잖소."
릭의 중얼거림에 벨져가 웃음을 터트린다. 크지는 않은 소리였으나 릭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가슴을 밀어내는 손짓에 릭이 몸을 끌어안았던 손을 풀어낸다. 저 멀리 침대맡에 놓인 옅은 등불이 어둡게나마 벨져의 얼굴을 비춘다. 입꼬리를 끌어올린 벨져의 미소는 어딘가 일그러져있다.
"내가 살아있다고?"
웃음이 남은 말끝이 작게 떨렸다. 벨져의 말에 릭은 덜컥 겁이 난다. 아래로 늘어진 손을 잡아들어 손가락을 얽었다. 차갑지는 않은 서늘한 피부로 체온이 스며든다.
"그럼 유령이란 말이오? 이렇게 따듯한데?"
벨져는 입을 다문 채 눈을 가늘게 뜬다. 벨져. 대답을 구하는 부름은 절박하다. 대답은 없다. 그 정적을 참지 못하고 릭이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연 순간, 벨져가 스스로의 입을 틀어막았다. 격한 기침이 몇 번. 손이 풀어진다. 허리를 숙이고 콜록거리는 벨져에게 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을 허공에 띄울 뿐이다.
소리가 가라앉고 입술과 손바닥 사이로 붉은 타액이 늘어진다. 벨져는 한참이나 숨을 고르고 휘청거리며 침대로 다가가, 걸터앉았다. 어깨가 위아래로 움직인다.
"고작 반 시간조차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런 몸을 살아있다고 하나?"
창백한 얼굴. 입가로 흐르는 빨간 피. 거기에 과하다 싶으리만치 마른 몸까지. 릭은 그 앞으로 다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벨져가 숨을 고르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확실히 살아있는 시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래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릭 톰슨. 형이 내가 죽었다 전했다면 더욱이나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니면, 형이나 이글에게 용건이 있는 건가? 이런 야심한 밤에?"
작은 목소리는 조용히 말해야 하기 때문은 아니리라. 그마저도 벨져답지 않은 유약함이었으나 그래도 음색은 또렷했다. 지끈거리는 가슴을 애써 억누르며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장갑을 꺼낸다. 릭의 손가락에 잡힌 검은 장갑을 보고 벨져가 눈을 크게 뜬다.
내 장갑이군. 그렇소. 왜 네가 그걸 가지고 있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오.
벨져는 릭의 손에 들린 장갑을 가만히 바라본다. 어째서 자신의 물건이 릭에게 있는지 벨져 본인도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벨져가 보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으면서도 혹시나 싶었건만. 역시 누군가 다른 이가 보낸 거겠지. 무슨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입술을 깨문다. 하얀 손이 눈앞에 내밀어 진다.
"돌려준다 하니 기꺼이 받도록 하지."
여기에 올려두라 까딱거리는 손가락을 빤히 보고, 릭은 장갑을 등 뒤로 숨겼다. 녹색이 번진 푸른 눈이 가늘어진다. 허공에 놓인 손이 아무것도 받아들지 못하고 움찔거렸다.
"이런 이런, 기껏 보내주고 빼앗는 건 아니지 않나?"
"난 준 기억이 없다 릭."
"그대가 보냈잖소."
아니라고 알면서도 짓궂게 트집을 잡았다. 대답은 없다. 허공에 머물던 하얀 손이 허벅지 옆, 침대 위로 떨어졌다. 벨져의 두 눈이 릭을 응시한다. 마른 입술은 굳게 다물린 채 열릴 줄을 모른다. 패배한 건 릭이었다.
왼손을 등 뒤에 두고 장갑을 숨긴 채, 오른손을 뻗었다. 땀에 젖은 손이 차가운 볼에 닿는다. 순식간에 체온을 빼앗긴다. 비어버린 자리를 감정이 채운다. 꿈에나 보았던가. 손끝이 떨린다. 타액을 삼키는 목이 소리를 냈다. 입술을 축인다. 벨져. 이름을 불렀지만 이어질 말을 찾지 못했다. 금붕어마냥 입만 뻐끔거렸다. 저도 모르게 움츠린 손톱이 하얀 볼을 긁는다. 릭은 그조차 깨닫지 못한다. 그때였다.
조용히. 벨져가 무언으로 속삭인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데. 저도 모르게 그리 말하려한 순간, 벨져의 손바닥이 릭의 입을 틀어막았다. 시선이 문을 향한다. 똑똑. 노크 소리. 릭의 몸이 경직된다. 그리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조금 더.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손바닥이 입에서 떨어지고, 그 대신 가느다란 손가락이 릭의 입술 앞에 놓였다. 가만히 있어라. 그 중얼거림에 타액을 삼킨다. 그리고 잠잠해졌다가 똑, 똑. 노크가 두번 더. 마지막 노크는 무겁게 떨어졌다.
"…형이다."
끼익거리는 침대의 비명. 벨져가 몸을 일으킨다. 릭도 함께 소리죽여 몸을 일으키고, 옆으로 비켜섰다. 비켜서는 릭을 가만 보더니 손가락을 까딱이고는 바닥까지 드리운 침대 시트를 걷어 올린다. 숨어라. 그 말에 반박할 새도 없이 등을 떠밀려 침대 밑으로 몸을 숨겼다. 두꺼운 시트가 흘러내려 공간을 막는다.
"벨져, 열어라."
몇 겹이나 막혔음에도 명확하게 들리는 음성. 카펫이 벨져의 발에 스쳐 사박거린다. 새카맣게 뒤덮인 침대 밑은 그저 소리뿐이었다. 문이 열리는 경칩음. 심장이 크게 뛴다.
1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