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거리는 소리. 설마 이렇게 가버릴 줄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그 남자가. 믿기지 않는걸.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어. 사람 앞일은 모르는 법이야…. 흘러들어오는 말은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가 아니다. 고삐를 잡지 못한 능력은 마음을 긁어모은다. 전신으로 소리가 닿았다. 마틴 챌피는 검은 옷을 입고 멍하니 서 있을 뿐이다.
믿기지 않는 일을 받아들여야 할 때 사고는 정지한다. 마틴 챌피는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정작 지금 본인의 마음은 알 수가 없었다. 마틴이 평생에 마음을 읽을 수 없던 타인은 단 한 명 이었다. 지금 저 상자 안에 누워있는 동양인. 티엔 정이 그러했다. 저자가 더이상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제 마틴이 생각을 읽지 못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몇백 몇천 아니 몇만 번을 생각했던가. 횟수를 세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숫자는 알 수 없지만 마틴은 자주, 곧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저 남자가 내 주변에서 사라진다면! 그리되기를 상상했고 그리되기를 바라왔다. 티엔 정이 사라진 세상에서 후련해진 자신을 떠올린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조금 더 개운할 거라 생각했는데.
마틴은 어딘가 먹먹한 제 가슴을 부여잡으며 생각한다. 슬픈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그래, 그게 아니라 그냥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랐을 뿐 죽기까지 바란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단 한 번도 죽으라는 생각을 않았던 건 아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재단에 뜬금없는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공백을 메워야한다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리라. 마틴은 그리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인정해야 한다. 티엔 정이 죽었다.
――라는 꿈을 꾸었다.
무슨 연유로 그리되었더라. 눈을 뜬 마틴은 천장을 바라보며 벌써부터 어렴풋해지는 기억을 애써 부여잡아본다. 차에 치였던가? 아니지, 그 남자는 차에 치였다고 죽을 남자가 아니다. 아무리 꿈속에서라도. 그러면 칼에 찔려서――도 죽을 것 같지 않다. 칼이 부러지겠지. 아니면 총에 맞아서…총알이 들어가긴 하나? 튕겨 나갈 것 같은데.
티엔 정이 죽는다는 심상은 생각보다 현실성이 없다. 꿈에서 저 동양인은 분명 죽었는데도 어째서인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해내 마틴 챌피. 벌써 부옇게 흐려지는 이미지를 억지로 끌어낸다.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떠올려보려고도 했다. 허나 그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항상 저 거슬리는 동양인이 제 눈앞에서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으나 막상 그 상상을 구체화하기에는 납득되는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마틴은 제 턱을 손끝으로 탁탁 치며 고뇌했다.
쓸모없는 남자라고 마틴은 생각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융통성은 제로, 그러다 보니 인격적으로도 어딘가 이상하다. 침대에서도 영 재미가 없다. 굳이 그런 남자가 아니어도 아시아 스카우터로 쓸만한 사람은 줄을 섰을 텐데. 그런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에게 브루스 보이틀러가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브루스가. 마틴을 이젠 없는 사람 취급하다시피 하는 그 브루스가! 거기에 마인드 리딩을 시도했을 때의 그 재수 없기 짝이 없는 반응까지! 마틴은 티엔 정의 표정을 떠올리기만 해도 미간이 구겨지는 것을 어쩔 수는 없었다.
아침부터 이런 재수 없는 꿈이라니.
어떤 점이 그리 기분이 나쁜지는 불확실하다. 티엔 정이 죽었다는 점? 그 이유를 떠올리지 못하는 점? 아니, 그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게 어째서 찝찝해야 하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로 불쾌한 아침이 흘러간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도 불쾌한 기분이 영 사라지지를 않는 마틴에게 놀라운 말이 들려왔다. 동쪽에 다녀온 티엔 정이 요상한 풍토병에 걸려왔다는 소식.
풍토병이라는 말은 마틴에게는 죽을병이라는 의미로 닿았다. 서두르지 않는 척 자꾸만 빨라지려는 다리를 붙들어매며 복도를 걷는다. 몇 번이나 어깨가 부딪혔다. 마음이 흐트러지니 능력이 자꾸만 새었다. 설마 그 티엔 정이. 그 동양인도 병에는 별수 없는 모양이군…. 갖은 생각이 들린다.
티엔은 제 방에 있다고 했다. 마틴은 문앞에서 그 제자와 마주쳤다. 하랑이 씨익 웃었다. 어, 마틴 형, 병문안 온 거야? 이 기회에 잘 봐두라구 싸부가 언제 이러겠어? 히히덕거린다. 생각보다 별거 아닌 병인가? 정신없이 뛰던 심장이 약간 느릿해졌다. 하랑이 손잡이를 잡았다. 문이 열린다. 들어가 보셔. 비켜서는 하랑 옆으로 방에 발을 들였다. 저편으로 침대에 누운 사람이 보인다.
티엔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그 철통 같은 표정으로 침대 위에서 눈만 깜빡이고 있다. 마틴은 문가에 서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모습을 가만 보았다. 허리 아래가 잘 안 움직인다더라구. 하랑이 귀띔했다.
아 그렇군요. 걱정할 건 없고 며칠 지나면 낫는대, 난 그동안 좀 놀아야지 그럼 싸부 말상대 좀 해줘~.
티엔의 어린 제자는 손을 팔락이며 저 멀리로 사라졌다. 흥얼거리던 콧노래만이 귓가에 남는다. 등 뒤로 문이 닫혔다. 마틴은 문 앞에 서서 눈을 찌푸렸다. 걱정? 걱정을 했나. 아니 아니다. 그저 생각보다 너무 멀쩡해 보이기에 놀랐을 뿐이다.
티엔의 방은 그 성격답게 쓸모없는 물건이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 생활감이 희박한 방을 가로질러 침대 곁으로 걸어갔다. 마틴이 근처로 다가가서야 티엔은 눈을 움직여 그 얼굴을 올려다본다. 숨을 들이쉬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꼴 좋네요.”
흔들리려는 목소리를 애써 유지한다. 고개를 좌우로 크게 저어 보인다. 숨을 한 번 내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기’라는 거, 병에는 쓸모 없나 봐요?”
약해진 지금은 가능할까 싶어 조심스레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마음은 읽히지 않는다. 새카만 두 눈이 깜빡깜빡 마틴을 비춘다. 병에 걸리고서도 여기까지 자신을 제어할 수 있다니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고 마틴은 비꼼 섞은 감탄을 흘린다.
신체의 윤곽을 따라 툭 튀어나온 이불 옆으로 몸을 내렸다. 얇은 이불 위로 다리를 건들어보아도 반응은 없다. 티엔은 그저 제 몸을 건드는 마틴을 약간의 움직임과 시선만으로 좇을 뿐이었다. 그 시선에 개의치 않고 단단한 복부를 툭툭 쳐본다. 정말 안 움직이나 봐요? 그런 모양이군. 짧은 답변.
“이래서야 업무는커녕 밤일도 글렀네요.”
마틴이 코웃음 쳤다. 명백하게 자신을 향한 조소임에도 티엔은 입꼬리를 올린다. 훗. 작게 흘리는 웃음이 마틴의 신경을 긁었다. 항상 부드럽게만 보이던 표정이 비뚤어진다.
“걱정해 주는 건가?”
“왜 그렇게 생각하죠?”
저도 모르게 말이 먼저 튀어나갔다. 상대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티엔의 말을 자르기라도 하듯 공격적으로 나간 반문에 덧붙여 마틴이 말을 잇는다. 이렇게 말을 해봤자 꿈틀도 하지 않을 티엔 정이라고 이미 잘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말을 않을 수는 없었다.
“당신은 마음을 읽을 수 없잖아요. 어떻게 장담하나요? 자신감이 아주 넘치는군요.”
“난 장담한 적이 없다.”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오고 마틴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답답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 속을 읽고 그에 맞는 답으로 되받아치면 되는데, 티엔 정의 속만큼은 읽을 수가 없었다. 병에 걸린 지금도. 재차 그 속을 읽으려 해보았으나 돌아오는 건 정적과 티엔 정의 기분 나쁜 웃음뿐이다.
마틴은 눈을 찌푸린다. 깜빡깜빡 감겼다 뜨였다 하는 검은 눈에 잔뜩 심통이 난 제 모습이 비추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저 새카만 눈동자가 의외로 만물을 선명하게 비춘다는 사실을 마틴은 잘 알고 있다.
“혼자 웃고 화내고. 바빠 보이는군.”
귀에 닿는 평탄한 목소리와 변화 하나 없는 표정에 마틴은 고개를 돌린다. 다리를 흔들어 바닥을 두 번 찼다. 그리고 다시 눈을 흘긋 돌려 티엔의 표정을 살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눈을 돌려도 그 행동을 알 수 있었을 것을. 능력이 통하지 않으니 눈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말을 할까 말까. 이런 말을 꺼내는 의미가 있나. 자문을 반복했다. 잠시 시선을 돌렸다가, 입을 연다.
“오늘 당신이 죽는 꿈을 꾸었어요.”
딱히 반응을 바란 건 아니다. 그래도 나름 반응이 있겠거니. 그리 생각하고 한 말인데도 티엔은 미동도 없다.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마틴은 생각한다. 시선을 돌렸다.
마틴은 말을 꺼낸 것을 약간 후회했다.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응을 하지 않을까 하긴 했으나 굳이 이런 말을 한다고 크게 놀랄 인물도 아니고. 불쾌히 여길 사람도 아닌데. 어째서 말을 하고 싶었는지 저 자신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쓸데없이 가슴이 뛰었다. 안타까운 인재를 잃었어. 앞일은 모르는 법이야…꿈에서 들은 목소리가 끈질기게 마틴의 뒤를 따라온다. 고개를 내저었다.
마틴도 딱히 말을 더 잇지 않고 가만있으니, 그제야 티엔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꿈은 현실의 반대라고들 하지.”
순간 덜컥 생각이 멎었다. 앞으로 모은 제 손가락을 잠시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퉁명스레 말을 내뱉었다.
“그렇죠.”
고개를 돌려 다시 티엔과 시선을 마주한다. 소리는 더이상 마틴에게 따라붙지 않는다.
“꿈에서 죽었으니, 살겠네요.”
“내가 죽기를 바라나? 마틴 챌피.”
“그렇게 보이나요?”
도무지 생각을 알 수가 없다. 모든 답안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틴의 눈에 답이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생각은 마틴의 영역이었는데. 병이 든 지금조차 마틴 챌피는 티엔 정의 생각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저 눈빛이 싫었다. 속을 뻔히 들여다보는 저 눈이. 대체 뭐가 보이기는 한 건지 싶은 새카만 눈. 저를 거울처럼 비추는. 모든 이의 속을 읽어내는 마틴이 유일하게 마음을 알 수 없는 자, 그자가 마틴 챌피의 속을 꿰뚫어보다니.
하지만 이번엔 티엔이 틀렸다. 반쯤은 억지로 생긋 웃어보인다. 새카만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을 보고 마틴은 자신의 마음을 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을 인정한다. 그래야만 티엔에게 이길 수 있으므로.
한쪽 무릎을 침대 위로 올려 얼굴을 티엔에게 가까이 가져간다. 검은 눈동자를 직시했다.
“이번엔 당신이 틀렸어요. 티엔 정. 난 당신이 살기를 바라요.”
사람 얼굴을 이렇게 빤히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얼굴을 굳이 보지 않아도 생각은 자연스레 알 수 있었으니까. 마틴 챌피에게 의사소통이란 타인의 생각을 읽고 그에 맞는 대답을 적당히 내보내는 것. 그게 전부였다. 다만 티엔 정에게 그런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마틴은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티엔의 눈을 보고, 얼굴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그 생각을 파악하고자 애를 쓴다. 그 상대는 여전히 미동도 없다.
마른 목으로 타액을 삼켰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제 마음을 내뱉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검은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이 흔들렸다. 이 남자의 말대로 혼자 웃고 울고 화내고, 광대마냥 일인극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티엔이 볼 제 모습이 제법 궁금했다. 마틴은 가만히 생각하다가, 적당히 둘러대기로 한다.
“당신은 아시아 지역 스카우터니까요. 아직 정해진 후임도 없는데 죽어버리면 재단에 있어서는 큰 손해라구요? 난 당신이 그렇게 쓸모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말이죠.”
“그렇군.”
가까운 거리다. 숨결만이 닿는 거리에서 마틴은 눈을 깜빡이며 티엔을 바라보았다. 티엔도 마틴의 시선을 그대로 받아쳤다. 갈색 눈동자에 담긴 복잡한 감정을 티엔이 알고 있는지 아닌지, 마틴은 답안지를 적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다. 내뱉지 못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말하면 더이상 마틴 챌피일 수 없을 것 같아 말하지 못한다.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내뱉지 않으면 그건 그것대로 죽을 것만 같았다.
하필 이럴 때 허리를 못 쓰나요, 정말 쓸모가 없네요.
소리도 육체도 금한다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까. 해답을 알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채로 충동에 따라 입술을 대었다. 눈을 언제부터 감았는지는 모른다. 그저 입술을 마주 대고 있었다. 그리고 속삭인다.
“인정할게요.”
무엇을, 이라고 티엔은 묻지 않는다. 티엔은 제 속을 마틴에게 보이지 않는다. 해답지는 자신이 꼭꼭 숨긴 채 마틴을 대한다. 마틴은 티엔을 보며 매 순간 저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티엔을 생각하는 저 자신을. 새카만 눈에 비치는 제가 어떤 모습인지를. 하지만 그 모습을 알고 인정하는 것과 언어로 구체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마틴은 마틴 챌피로서 티엔 정에게 이기고 싶었으므로.
놀랍도록 조용한 공간. 아무런 생각도 들리지 않는다. 차오르는 소리를 입술을 더욱 눌러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