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죽이는 순간
글벨/전력60분 : 장난
딱히 제목에 큰의미는 없고...쫌 그렇긴한데 야한씬은 없습니다
슬며시 위에 올라타 침대위로 퍼진 풍성한 치맛자락을 잡았다. 목적이 확실한 움직임이었으나 그 대상은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은 채 딱히 저항하지 않는다. 가슴팍위로 놓인 검은 장갑이 꼼지락거린 순간 막내는 잠시 숨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작은 숨소리만이 계속된다.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드레스 아래로 보이는 발목을 잡아 슬쩍 옆으로 벌렸다. 무릎을 밀어넣어 다리 아래로 깔린 두터운 치맛단을 안쪽으로 밀어넣는다. 그리고 시야를 가리는 하얀 프릴을 손에 쥔다. 몇겹이나 되는 프릴을 조용히 하나하나 걷어올리고, 드레스를 띄우는 패티코트마저 걷어올린 아래로는 검고 얇은 스타킹. 그리고 가터벨트. 애석하게도 그 위는 하얀 드로워즈에 가려져 둔부까지는 보이지 않는다. 칫. 혀를 차는 막내의 머리를 내려치는 검은 장갑.
"아야."
"장난이 심하구나, 이글."
입만 다물고있으면 조숙한 아가씨라고 우겨볼 수 있을법한. 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그야말로 확실한 청년의 음색이다.
이글 홀든의 둘째형인 벨져 홀든이 어쩌다 이런 아가씨의 행세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그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 임무니까. 성인이 목전이라고는 하나 아직 아이의 모습이 남은 벨져 말고는 아가씨를 소화해낼 사람이 없다나. 그런 연유로 벨져는 검고 푸른 드레스를 억지로 몸에 둘렀다. 다만 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몸치장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으나 입을 일이 없던 중무장과의 전투에 체력을 쏟아버린 나머지 화사한 드레스가 몸을 감쌌을 때 이미 벨져는 기진맥진이었다. 사람이 데리러 올 때까지 눈이라도 붙일 셈이었는데. 누워있다 보니 절로 잠에 빠졌던 모양이다. 벨져가 한숨을 내뱉는다.
다행히 옷매무새가 크게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상체만 멀쩡하다면 뭐. 혹시나 몸을 뒤척여 코르셋이 어떻게 되지라도 않았나 걱정했지만 허리를 끔찍하게 조이는 그건 퍽이나 멀쩡해 보인다. 이거하나 조이는데만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생각만해도 미간이 좁아진다.
아직 어린 막내는 아직도 치맛자락에 몸을 파묻고 제 형을 올려다보고있다. 내려가라고 눈짓을 해보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며 장난스레 웃을뿐이다.
"이글. 비켜라."
"아 왜~ 회사에서 연락도 왔다니까? 쫌 늦는다구."
"하."
여기서 더 늦는다고? 복장과 어울리지않게 더 구겨지는 얼굴. 막내의 부드러운 맨손이 살짝 고개를 돌린 그 턱을 잡는다. 다른 사람의 손이었으면 당장에라도 내쳤을 무례한 손길을 내버려 두는 건 어디까지나 막내의 이 손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작은형."
어느새 막내의 얼굴이 코앞에 와있다. 이제 10대 후반에 접어드는 막내. 언제까지고 어리고 귀여운 막둥이라고 생각했건만 언제부터 이런 식으로 어른스런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걸까. 아직 장난기 가득한 미소는 이글 홀든의 본성이며 마른 입술을 적시는 혀는 수컷의 본능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장난에 응해주기에 지금 복장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동생의 이정도 도발에 홀랑 넘어갈만큼 만만한 벨져도 아니다. 키스를 하려 더욱 얼굴을 가까이 대는 이글의 이마를 스윽 밀어낸다. 이글은 그 손목을 잡아 아래로 눌렀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뿌리치려면 뿌리칠 수도 있는 손이지만 어쩔까. 벨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막내의 귀여운 시선을 받아친다.
"이글, 옷 구긴다."
"벗기지는 않을게?"
한쪽 손은 시트 위에서 벨져와 손가락을 얽고, 나머지 손은 풍성한 드레스 아래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스타킹을 쓸어올리며 가터벨트 옆의 맨살을 더듬는 손길에 벨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응석이라도 부리는 건지 이빨을 보이며 막내답게 웃는 얼굴을 보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음대로 해라. 잡히지 않은 손을 시트위에 짚고 고개를 돌린다. 어정쩡하게 들었던 상체를 커다란 베개위로 파묻는다. 잡힌 손으로 이글의 손가락을 맞잡으니 젖은 입술이 장갑위로 입술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보란듯이 미소. 어디서 보고 배운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들에겐 백발백중이겠군. 동생의 성장에 벨져가 한숨을 내쉰다.
"기왕이면 흰색을 입었으면 좋았을걸. 아깝구만 이거."
"흰 드레스는 쉽게 더러워지지."
"그래도 흰건 웨딩드레스같잖아?"
치마아래로 파묻은 손이 드로워즈를 끌어내린다. 허리를 들어 그 손을 도왔다. 그 와중에도 새파란 시선은 제 형의 얼굴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런 속셈이 있었군. 벨져는 이글의 귀여운 수작에 답이라도 하듯 검은 스타킹에 싸인 다리를 하나 들어 그 허리로 얹는다.
"흠, 결혼장난이라도 하자는 건가?"
"싫어?"
손이 떨어진다. 몸이 더욱 가깝게 밀착했다. 옷감 몇겹 너머로 묵직한 하체가 닿는다. 적나라한 욕망과 장난스런 어린 미소가 지독히도 언밸런스했다.
"지금 여기서, 작은형이 내 신부가 되는거야."
파란 눈이 목전이다. 막내의 손이 제 형의 한쪽 손목을 잡아 그 앞으로 가져온다. 하얀 이빨이 보란듯이 장갑 끝을 물어 벗겨내었다. 그래 이러라는 거군. 둘째는 막내의 목으로 팔을 감아 당긴다. 목뒤에서 손을 맞잡는다. 한쪽은 장갑, 한쪽은 맨손. 묘한 감각. 입술이 닿는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닿은 입술로 전한 속삭임을 분명 막내도 들었으리라.
15.04.24